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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흥우] 산낙지 먹기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외국 여행 시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베트남을 처음 여행했을 때 쌀국수를 먹다 향채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라도 처음 맛본 현지 음식에 대한 이런 트라우마는 하나쯤 있을 듯하다. 외국 여행 필수품으로 김치며, 김이며 각종 밑반찬과 된장, 고추장을 바리바리 싸가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된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식이 과거에 비해 세계화됐다 해도 대다수 외국인에게 생소한 음식인 건 틀림없다. 그중에서도 날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특히 심하다. 노량진수산시장에 가면 비싼 활어를 사서 구이로 먹는 외국인을 쉽게 발견한다. 구이를 먹을 생각이었으면 굳이 활어를 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생선회나 육회 특유의 쫀득한 맛을 알게 되면 그 맛에 푹 빠질 텐데, 우리로선 아쉽다.

날음식은 조선을 찾은 중국인에게도 낯설었던 모양이다. 유몽인(1559~1623)의 ‘어유야담’에 관련 일화가 전한다. 중국인이 “조선 사람은 어떻게 회를 먹니. 아유! 비위 상해”라고 ‘디스’하자, 조선 사람이 “공자님도 드시던 거야”라고 한 방 날린다. 논어 향당(鄕黨)편에 회불염세(膾不厭細) 구절이 있어서다. ‘(공자는) 회는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고작 날음식에도 몸서리를 치는데 살아있는 낙지를 통째로 먹는 식문화는 외국인에게 충격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고 한다. 스파이크 리 감독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리메이크하면서 주인공 최민식이 산낙지를 통째로 입안에 욱여넣은 명장면을 되살리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리메이크작에서 이 장면은 주인공이 수조 속에 갇힌 문어를 바라보는 것으로 대체된다. 추측건대 십중팔구 최민식 역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조슈 브롤린이 절대 그것만은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쳤을 게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1월 23일부터 29일까지 해외 SNS를 통해 외국인 944명을 대상으로 ‘가장 먹어보고 싶은 이색 한식’을 조사한 결과 산낙지가 1위(26%)를 차지했다. 물론 통째로 먹는 게 아니라 칼로 토막을 낸 것이긴 해도 의외의 결과다. 그것이 맛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호기심 때문이라 할지라도 날음식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에 변화가 일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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