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에게 아시안컵 우승은 지난한 과제였다. 대회 초창기였던 1956년(1회)과 1960년(2회) 정상에 오른 후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라 자임했지만, 번번이 결승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불운의 굴레를 깨뜨리고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최하는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이 다음 달 5일부터 시작된다. 개최국 UAE를 비롯한 24개국은 6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른다. 한국은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중국과 함께 C조에 편성됐다. 조 편성은 무난하지만 우승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26일 축구 전문가인 김대길 KBSN 해설위원, 박문성 SBS스포츠 해설위원, 신문선 명지대 교수 3인에게 아시안컵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UAE에서의 흑역사 ‘두바이 참사’
UAE는 한국의 아시안컵 역사에서 아픈 기억을 준 곳이다. 1996년 이곳에서 열렸던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 2대 6으로 완패한 ‘두바이 참사’가 그것이다. 아시안컵 외에도 중동에서의 경기는 대표팀에게 항상 녹록하지 않았다.
우선 중동의 환경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UAE는 한국과 5시간가량 시차가 있고 연말연시 기온이 20도 초중반에 달할 정도로 기후도 다르다. 김 해설위원은 “대표팀은 종종 중동 현지 적응에 실패해 졸전을 펼치곤 했다. 선수들의 활동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 해설위원은 “8강 수준의 팀들 가운데서는 누구도 절대 강자라고 보긴 어렵다. 한국이 강하긴 하지만 이 정도 실력 차로는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라고 했다. 박 해설위원도 “객관적으로 한국은 우승 후보지만 한 경기 삐끗하면 탈락할 수 있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벤투호와 경쟁자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아시아 팀들이 펼치는 밀집 수비에 한국은 늘 고전해왔다. 이를 뚫어내는 것은 지배와 공격의 축구를 추구해온 벤투호의 큰 숙제다. 전문가들은 아시안컵에서 벤투 감독의 스타일이 통할 것으로 판단했다. 신 교수는 “강한 압박과 직선적·공격적 패스는 대표팀의 강점이다. 약팀을 상대로 충분히 경기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해설위원도 “벤투 감독은 이청용, 이재성처럼 밀집 수비를 뚫고 상대 압박을 벗겨낼 수 있는 선수를 중용했다. 기술을 바탕으로 영리하게 플레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주와 이란, 일본 등 전통의 강팀들은 우승의 큰 장애물이다. 지난 대회 결승에서 한국을 무릎 꿇린 호주는 유럽에 가까운 신체조건이 장점이다. 박 해설위원은 “체격이 좋은 호주는 토너먼트에서 상당히 위협적인 상대”라고 평가했다.
아시안컵에서 한국과 수차례 대결하며 악연이 깊은 이란도 강적이다. 이란의 수비 중심 ‘늪 축구’는 지난 러시아월드컵에서 강팀들을 애먹일 정도로 완성됐다. 김 해설위원은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쓰는 수비 지향적 전술과 벤투 감독이 펼치는 지배·공격의 축구는 상극이다. 이란과 맞붙는다면 주도권을 쥐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안컵 통산 4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국인 일본은 얕봐선 안 될 라이벌이다. 신 교수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일본을 이기긴 했지만 점유율과 패스 등 세부 내용을 보면 크게 압도하지 못했다”라며 “일본은 이번에도 특유의 패스 플레이를 들고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시아·유럽 선수 컨디션 균형 맞춰야
대표팀은 최근 6번의 A매치에서 3승 3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다만 아시안컵은 A매치와 달리 긴 호흡으로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선수단의 컨디션에 신경 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 교수는 “컨디션 사이클이 중요하다. 조별리그에서 경기 감각을 70~80%정도 만든 다음 토너먼트에서 최고조로 끌어올려 결승까지 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과 아시아 리그 선수들의 각기 다른 몸 상태는 까다로운 문제다. 박 해설위원은 “아시아권 선수들은 시즌을 마치고 몸을 다시 만드는 중이지만,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한창 시즌을 치르다 왔다. 다른 컨디션을 어떻게 균형 있게 맞추느냐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에이스 손흥민은 조별리그 막바지에 합류한다. 그 빈자리를 채울 키플레이어로는 모두가 황의조를 꼽았다. 박 해설위원은 “아시안컵에서는 수비보다 공격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며 “황의조는 확실한 마무리를 지어줄 능력 있는 스트라이커”라고 호평했다. 김 해설위원은 “아시안컵에서도 아시안게임 때와 같이 킬러 역할을 해줘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