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백세희(39)씨의 연말 계획은 이렇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과 함께 해돋이를 보러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에 4살 아들도 함께 추운 바닷가로 데려갈 생각을 하니 다소 막막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게 호텔이었다. ‘해돋이 뷰’가 가능한 호텔을 찾아 서둘러 예약을 하고 따뜻한 곳에서 막 초등학생이 될 첫 아이의 앞날을 그려보기로 했다.
호텔이 소비자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선뜻 찾아가기엔 너무 비싸고 부담스러운 곳이라는 인식은 옅어진 지 오래다. 특별한 시즌이 오면 사람들로 붐비는 곳 대신 호텔에서 안락하고 쾌적하게 보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백씨는 30일 “추운 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에서 부대끼는 것도 힘들고, 요즘은 ‘노 키즈존’처럼 아이들을 반기지 않는 곳도 많기 때문에 조금 비싸도 호텔을 이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유아 동반 가족부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노년층까지 추운 겨울 호텔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연말 연초부터 1~2월 방학 시즌까지 호텔이 성수기가 되는 이유다. 그렇다보니 호텔마다 가족 단위 투숙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접목해 패키지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시즌에 맞는 상품들, 문화행사들과 연계한 패키지로 국내 투숙객들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31일에는 해넘이·해돋이 이벤트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백씨가 찾은 호텔처럼 ‘카운트다운’ 패키지 상품들이 여러 개 나와 있다. 부산 웨스틴조선호텔 ‘홀리데이 패키지’는 31일 자정 피아노, 색소폰, 드럼, 베이스, 트럼본의 5인조 재즈 밴드 공연과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카운트다운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명동에서는 호텔 최상층에서 투숙객과 함께 하는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가 펼쳐진다. 대형 스크린으로 서울 종로 보신각 타종행사도 생중계한다. 도심 속 카운트다운은 서울 중구 레스케이프 호텔에서도 할 수 있다. 31일 오후 10시부터 1일 오전 1시까지 최상층 바에서 공연과 함께 진행된다. 아코디언, 색소폰, 트럼펫 등으로 구성된 밴드가 배치될 예정이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호텔 카운트다운 파티를 이용할 수 있다.
호텔 카운트다운은 2040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많다.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면서도 가치 소비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2040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혼 2년차를 맞은 조현우(34)씨는 “호텔 카운트다운 파티라고 해서 막연하게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의외로 괜찮았다”며 “결혼 후 두 번째 맞는 연말도 아내와 호텔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벤트 차원에서 호텔을 가끔 이용하는데 의외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문화 콘텐츠를 결합한 이벤트도 풍성하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올해로 6년째를 맞는다. 매년 1월 1일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 공연실황을 호텔 연회장에서 생중계하는데, 올해는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안무감독을 맡았던 현대무용가 차진엽씨의 해설과 안무가 더해진다. 호텔 레스토랑의 정찬과 함께하는 이 상품은 매년 전석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
미술 전시 관람권과 호텔 숙박권을 패키지로 판매하기도 한다. 호캉스(호텔+바캉스)와 문화체험의 1석2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켄싱턴호텔 여의도의 ‘미라클 윈터 인 여의도 패키지’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매진 존레논 전’ 관람권과 숙박권이 묶인 상품이다. 레스케이프 호텔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회 입장권과 호텔 숙박권을 패키지로 한 상품을 내놨다. 미술관 관람은 숙박하는 날과 무관하게 미술관이 쉬는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언제든 가능하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도심 호텔 장점은 서울의 다양한 문화 공간에 접근성이 높다는 데 있다. 문화 상품과 숙박권을 결합한 패키지 상품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백화점 쇼핑몰 대형마트의 문화행사들이 호텔로 옮겨오기도 한다. 워커힐호텔은 독립서점 열풍을 이끌고 있는 ‘최인아 서점’과 함께 매달 투숙객을 대상으로 저자 초청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지난달엔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의 저자 연지원씨 등의 강의가 월 4회 이어졌다. ‘워커힐호텔 더글라스 문화살롱’이란 이름으로 진행하는 이 행사는 새해부터 매달 마지막주 일요일에 열린다. 서울 신라호텔은 다음 달 라이브 공연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상품을 판매한다.
호텔이 이렇게 다양한 문화 행사를 선보이는 건 호텔이 그만큼 소비자들과 가까워졌다는 방증이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을 많이 경험한 2040 세대를 중심으로 호텔을 ‘친숙한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과거엔 외국인 숙박객 중심이었다면 최근 몇 년 새 내국인 숙박객을 겨냥한 다양한 프로모션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