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대사외과학회 박도중 교수
체질량지수 35 이상 초고도비만 30~35 사이는 합병증 있으면 혜택
1000만원 가까이 들던 수술 비용 200만~250만원선으로 부담 줄어
비만으로 인해 취업 등 위협받던 사람은 개선된 삶 누릴수 있을 듯
“새 삶을 사는 것 같아요.”
키 163㎝, 몸무게 112㎏.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초고도비만이었던 이현석(32)씨는 “지금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히 건강한 상태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1년 전 그의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는 42로 매우 높았다. 아시아·태평양기준의 경우 BMI 30 이상이면 고도비만, 35 이상일 땐 초고도비만으로 분류된다. 당시 이씨는 폭식과 금식을 반복하는 생활패턴을 갖고 있었고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정신과 약물까지 복용하고 있었다. 심각하게 살이 찌면서 심한 코골이와 잠자면서 숨이 일시 멎는 수면무호흡 증상도 보였다. 혈당 수치도 높아 당뇨 전단계에 해당됐다.
이씨는 “10여년간 약물치료와 한방요법, 지방흡입술 등 여러 다이어트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체중 감소는 일시적이었고 중단하면 이전보다 살이 더 찌는 요요현상을 반복해 겪었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지난해 ‘위소매절제술’이라는 비만수술을 받고서 현재 85㎏까지 감량에 성공했다. BMI는 31수준까지 낮아졌고 혈당과 수면무호흡증, 우울증, 불안장애 등 동반질환들도 한꺼번에 좋아졌다. 다만 1000만원 가까운 수술 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1일부터는 이씨 같은 고도비만 환자의 수술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환자 부담액은 200만~250만원선으로 확 줄어든다. 비만수술의 건강보험 급여화는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가 지난 15년간 노력으로 얻어낸 값진 결실이었다. 학회 보험위원장을 맡고 있는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박도중 교수를 지난 26일 만나 비만수술과 건보적용에 관해 보다 상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박 교수는 동료인 박영석 교수와 함께 비만수술 건보 급여화의 산파 역할을 했다.
-비만수술 건강보험 적용의 의의는.
“비만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의 병으로 인식돼 온 만큼, 이를 치료하는 수술에 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식단과 생활이 점점 서구화되면서 고도비만 환자가 상당히 많아졌다. 고도비만은 비만 그 자체만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심장병, 뇌졸중, 2형당뇨병 등 동반질환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비만과 비만 합병증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도 늘고 있다. 비만수술 보험 적용과 보장성 강화는 더 빨리 이뤄졌어야 할 사안이다. 건강보험 급여화로 고도비만으로 인해 생활과 취업, 결혼에 위협받았던 사람들이 새롭게 개선된 삶을 누릴 수 있길 기대한다. 아울러 사회와 단절된 채 숨어살던 고도비만인들도 경제적 부담을 덜고 치료받아 당당하게 사회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 급여 기준은.
“연령의 경우 18세 이상만 보험이 적용된다. 18세 미만 청소년은 뼈 성장이 끝났다는 게 X선검사 등으로 확인돼야 수술과 보험이 가능하다. BMI 35 이상 초고도비만은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다. BMI 30~35 사이라면 비만 관련 합병증인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간질환, 심장혈관질환, 관절질환, 수면무호흡증, 천식, 가뇌종양 중 1개라도 갖고 있어야 된다. 환자 본인부담률은 20%다. BMI가 27.5 이상, 30 미만이라면 잘 조절되지 않는 당뇨병이 있을 경우에 한정해 보험이 적용된다. 다만 이 경우 선별급여로 환자가 80%를 부담해야 한다. BMI 27.5 미만인 경우는 건보 대상이 아니다. 한국에서 BMI 35 이상인 남자는 인구의 0.5%, 여자는 0.47% 정도다. BMI 30 이상인 남자는 4.7%, 여자는 3.7%다. 인구를 5000만명으로 가정할 때 BMI 35 이상인 사람은 약 25만명, BMI 30 이상인 사람은 약 200만명에 이른다. BMI 30 이상이면서 당뇨병 고혈압 등 합병증을 동반한 이들은 200만명 가운데 최소한으로 잡아도 125만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번 비만수술 급여화로 혜택을 볼 수 있는 대상은 적어도 15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되는 비만수술은.
“위소매절제술, 위우회술, 위밴드조절술, 십이지장치환술 등 국내에서 시행 중인 거의 모든 비만수술이 해당된다. 위소매절제술과 위우회술이 가장 많이 시행되고 있다. 고(故) 신해철씨 사망 사건 이후 비만수술이 많이 줄었으나 건강보험이 본격 적용되면 다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위소매절제술은 음식을 먹었을 때 잘 늘어나는 위 부위인 대만곡과 상단부를 잘라내 식사량을 제한하는 수술이다. 위우회술은 위를 식도 부근에서 작게 남기고 잘라 나머지 위와 분리한 후 소장과 바로 연결하는 방법이다. 섭취 제한과 흡수 억제 효과를 함께 볼 수 있다. 위밴드조절술은 압력 조절이 가능한 실리콘 밴드를 위의 위쪽에 설치해 조여주거나 풀어주면서 위의 크기를 조절한다. 어떤 방식이든 첫 수술 후 살이 충분히 빠지지 않거나 다시 체중이 증가하는 경우 수술 후 18개월 이상 지났다면 재수술도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체중이 충분히 감량돼 위에 넣은 밴드를 제거하거나 위우회술 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경우도 보험이 된다. 단, 위풍선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미용 목적의 지방흡입술, 비만치료 약물은 보험이 되지 않는다.”
-비만수술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
“‘살을 빼기 위해 수술까지 하느냐’라는 선입견이 있다. 이는 비만수술을 미용수술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고 고도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도비만은 많은 질병을 야기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비만수술은 현재까지 고도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알려져 있다. 고도비만의 경우 식이·운동요법 또는 약물로는 체중을 줄일 수 없다. 물론 엄청난 의지와 노력으로 살을 빼는 경우도 있지만 감량한 체중을 오래 유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수술 효과는 명확하다. 평균적으로 수술 후 1년째에 29㎏, 2년째 35㎏의 체중 감소 효과가 나타났고 BMI는 2년째에 12.4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형당뇨병 동반 환자의 85%에서 당뇨병이 호전됐고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었던 환자들은 각각 71%, 100%에서 개선됐다. 따라서 고도비만이라면 겁내지 말고 수술 치료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고도비만을 방치했을 때 나타날 건강상 위험이 수술로 인한 위험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비만수술은 안전한가.
“미국 연구데이터에서도 맹장수술 정도의 낮은 합병증을 갖는 ‘안전한 수술’이라고 나왔다. 비만수술 후 복강 내 출혈, 상처감염, 봉합선 누출 등 단기 합병증이 있을 수 있다. 위소매절제술 후 단기 합병증 발생률은 0.9~5.8%, 위우회술은 4.5~9.4% 정도다. 위·식도역류증, 소장 폐색(막힘) 같은 장기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는데, 위소매절제술은 9.1~14.9%, 위우회술은 15.1~17.3%로 보고되고 있다.”
-수술 전 준비해야 할 점은.
“비만수술을 계획했다면 바로 체중 감량에 돌입해야 한다. 수술하면 살이 빠질 테니 수술 전에 실컷 먹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수술 전에 조금이라도 살을 빼야 수술을 더 쉽고 안전하게 받을 수 있다. 보통 고도비만 환자들은 지방간이 심한데, 비대해진 간은 수술 시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큰 방해 요소다. 체중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간 비대를 크게 호전시킬 수 있어 보다 안전한 수술이 가능해진다.”
-수술 후 지켜야 할 사항은.
“체중이 급히 빠지면서 비타민 등 영양소 결핍이 발생할 수 있다. 종합비타민제를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 단백질도 충분히 섭취해야 근육손실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수술 후 입이 마르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은데, 가능한 하루 1ℓ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한다. 아울러 비만수술을 통해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비만수술은 적게 먹는 것, 즉 소식을 매우 쉽게 만들어준다. 또 살이 빠지면서 이전보다 운동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