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상상의 질서’를 언급한다. 종교 정치사상 경제 등과 같이 인간이 발명해낸 뒤 믿고 추종하는 사회적 가치기준과 체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하라리는 “새가 날아다니는 것은 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상의 질서’(날 수 있는 권리)가 실존적 본질(날개)보다 우월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하라리를 인용한 이유는 이 글이 2018년의 마지막 날 칼럼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문화예술계에서는 어떤 ‘상상의 질서’들이 생산되었는지, 그리고 그 질서들은 과연 ‘날개’를 달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정부가 ‘문화비전 2030’을 통해 내세웠던 새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에는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 공공성 혁신성이라는 가치들이 등장한다. 부정할 수 없는 멋진 가치들이다.
하지만 이 가치들을 내세우지 않은 정권이 과거 있었던가 할 만큼 진부하다. 정부는 ‘위기’와 ‘청산’에서 ‘비전’과 ‘미래’의 문화를 지향하겠다고 했지만, ‘위기’는 불황으로 가중되고 블랙리스트와 같은 ‘청산’ 과제는 흐지부지됐다. 오히려 피해를 입은 예술인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안겼다. 전자(위기와 청산)가 해소되지 않았으니 후자(비전과 미래)는 당연히 요원하다.
‘일’ 중심에서 ‘쉼’이 있는 문화를 표방했지만, 국민들 다수는 실직과 자영업 실패로 강제적 휴식을 하면서 고통받고 있다. ‘불공정’과 ‘독과점’에서 ‘공정’과 ‘상생’을 지향하겠다고 했지만 정부의 블라인드 임명 시스템은 건재했고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장 임명에는 여전히 코드 인사와 낙하산이 엿보였다.
새해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전망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시한폭탄처럼 대학에 던져진 대학강사법은 그렇지 않아도 실기강사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예술대학에 큰 폭풍우를 몰아올 태세다. 국공립대학조차 타 대학 전임강사를 확보하거나 4대 보험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겸임교수 제도를 마련하고자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래의 학위 소지자들의 대학 진입도 암담해졌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또한 문화예술계 종사자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영세한 민간 기획사들이나 무대 준비를 위해 야근과 밤샘 근무가 일상인 현장 스태프들의 근무 여건을 전혀 고려치 않은, 허울 좋은 ‘상상의 질서’일 뿐이다.
강사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강사법이 도리어 강사들을 좌절시키고, 근로자를 위한 법이 근로자에게 박탈감을 주는 이유는 이 정책들이 다양한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도덕적 당위성만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인간이 삶의 편의를 위해 창조해낸 허상이 도리어 인간의 삶을 압도하고 옥죄는 격이다. 하지만 새들이 날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날개’다. 정부가 도덕적으로 옳다며 공수표처럼 남발한 바로 그 명분들이 국민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스스로 키운 날개를 꺾지는 말기를 바란다. 2019년을 위한 간절한 소망이다.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