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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전정희] 100세 맞은 철학자 김형석 교수



우리 시대의 철학자이자 그리스도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올해 우리 나이로 100세가 됐다. 3·1운동 이듬해 태어나 백수(白壽)가 된 것이다. 고향 평남 대동은 여전히 갈 수 없는 땅이다. 김 교수는 일본 조치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다. 1980년대 초까지 연세대에서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그가 60, 70년대에 쓴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등의 철학산책 저서는 우리네 팍팍한 삶에 위로가 되곤 했다. 동료 철학자 안병욱, 수필가 피천득 등과 함께 서정적 문체의 힘을 보여주는 현자였다.

새해 첫날, 이 노철학자의 삶을 아침 TV 프로그램을 통해 볼 수 있었다. KBS 1TV ‘인간극장’이 5부작 ‘삶이 무어냐 묻거든’이란 타이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은퇴 후에도 늘 강단에 섰다. 지금도 특강이 연 160회에 달한다. 환한 미소가 가득한 얼굴, 천천히 말하면서도 자신의 언어에 찔릴까 배려하는 자세, 고단함에 대한 위로, 산책과 절제를 통한 몸가짐 등에서 배어나오는 ‘아름다운 노년의 표상’이다. 오래된 것은 보석이 된다고 했던가.

그가 새해 첫날 방영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젊은 나이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과 무얼 하고 싶은가 물었을 때 80% 가까이가 그 사람과 식사하고 싶다고 답한다. 음식을 같이 먹는 게 하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먼저 간 아내를 추억하며 꺼낸 말이기도 했다. 그의 식탁은 소박했다. 노년의 위가 소화시킬 수 있는 건강한 음식 몇 가지를 갖춘 소식이었다. 그는 이 식탁 앞에서 수저를 들기 전 기도했다. 철학자의 기도는 다른 울림이 있다. ‘행복예습’ ‘예수’ ‘백년을 살아보니’ 등의 책에 담았던 삶에 깊이가 그 기도 자세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도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백세시대를 살아간다. 누구에게는 축복일 수 있고 또 누구에게는 재앙일 수 있다. 울면서 태어나 외롭게 죽는 것은 사람의 숙명이다. 그러나 백세를 살아오는 동안 사람은 지혜를 쌓는다. 그 지혜를 쌓은 노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두고 큰 박물관 하나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는 격언이 괜한 얘기가 아니다. 고령화 세대가 살아가는 자세를 노교수의 감사 생활에서 배워야 한다. 그것은 뜨끈한 공깃밥 한 그릇을 손으로 감싸고 기도하는 마음이다. 밥은 식탁이 되고 식탁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든다. “고맙네”라고 말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노년이어야 한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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