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변화된 남북 관계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호평했다. 더 나아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뜻을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은 한반도 군사적 긴장 해소를 위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나 전략무기 반입 등의 전면 중단을 요구했다. 남북 협력 강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제안이지만 동시에 우리 정부에 현 국면을 진전시키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촉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세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이적 성과들이 짧은 기간에 이룩한 데 대해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의 대남 메시지는 결국 평화가 경제를 만들고, 경제가 평화를 단단히 한다는 것”이라며 “핵심은 비핵화를 통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특정한 것은 남북 협력의 상징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성공단 사업은 2010년 이명박정부가 독자 제재인 5·24 조치를 발표한 후에도 6년 이상 지속되던 사업으로 이를 정상화한다면 남북 관계 개선의 확실한 ‘물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대북 제재와 직결돼 있어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우리 정부가 남북 철도·도로 공동조사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때처럼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제재 예외인정을 받아 달라고 요구한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두 사업이 보수 정권 당시 일방적으로 중단된 것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와 상관없다고 보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남측을 시험대에 올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김 위원장이 언급한 ‘조건’은 북한이나 우리 정부가 내건 조건이 아니다”라며 “무조건적 재개를 요구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무기 전개 중단 요구도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남북 군사분야합의서를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이라고 평가했다. 한반도 내에서의 군사적 도발을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재확인한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남북 관계가 군비통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도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한 것처럼 한·미 연합훈련 중단도 일회성이 아닌 항구적 조치가 돼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미국 전략자산의 국내 전개 중단은 우리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기 힘든 사안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양국 정부가 지난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결정하자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온 바 있다. 신 센터장은 “만약 우리가 북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북한은 이를 대화 중단 등 다른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의 요구가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남북 경협과 한·미 연합훈련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지속돼온 사안이다.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