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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새해 복 많이 베푸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인사말이 관용어처럼 돼버린 탓일 텐데, 농담을 좋아하는 이들은 온라인 낱말사전에 ‘새해복’이란 단어를 슬쩍 끼워 넣으며 ‘복어의 일종’이라고 정의했다. “미국에선 해피뉴이어, 중국에선 신녠콰이러 등으로 불리며 세계 각지에 서식한다. 12월 말~1월 초 대거 번식하는 습성을 가졌다. 독이 있어 한국에선 복주머니에 담아 유통해왔다…” 하면서 능청맞은 풀이를 곁들였다. 해마다 이맘때 주고받는 인사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복주머니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시작됐다. 정월이 면 붉은 종이에 볶은 콩을 한 알씩 싸고 이를 고운 주머니에 넣어 종친들에게 보냈다. 주머니 없는 한복에 이 복주머니를 차고 다니면 만복이 온다고 믿었다.

원래 연장자가 아랫사람에게 하던 덕담인데, 아이들이 세배 때 입버릇처럼 말하게 된 건 어른도 복을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말이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많이’ 받으라며 복의 규모까지 담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받으라는 건지는 설명이 없다. 그 모호함을 의식한 듯 외환위기를 겪은 뒤인 2000년대 초반 “부자되세요”와 “대박나세요”란 인사말이 “새해 복 많이~”의 아성을 넘봤다. 복은 곧 돈이라는 구체적 인식이 담겨 있었다.

다시 10여년이 흘러 ‘새해 복 많이~’의 재해석을 시도한 사람은 가수 장기하였다. 2015년 ‘새해 복’이란 곡을 발표했다. “올해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 말하고 싶겠지/ 새해 복만으로는 안 돼”로 시작해 “열심히 해야지/ 새해 복만으로도 돼”라고 끝을 맺는다. 주야장천 “새해 복”이 반복되는 랩이어서 정확한 의미를 읽어내기 어려웠지만 팬들은 열심히 사는 이들을 응원하는 노래로 받아들였다. 복은 기원하는 이의 뜻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뭔가 철학적인 생각을 던져주는 현상이었다.

서양의 한 매체는 몇 해 전 ‘행복을 가져다주는 애플리케이션’ 15개를 선정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명상 앱, 규칙적으로 물 마실 시간을 알려주는 앱,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운동 앱 등이 꼽혔는데 이런 것도 있었다. ‘페이 잇 포워드’란 앱은 “누군가 읽을 수 있도록 정말 괜찮은 책 한 권을 카페 빈자리에 슬쩍 놔두고 오기” 같은 미션을 하루 하나씩 제시한다. 낯선 이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는, 복은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 뜻일 테다. “새해 복 많이 베푸세요”란 인사는 어떨지….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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