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김명호] 空約의 최후



지난 대선 때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이 실제로 이행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공약(空約)이라고 느꼈지만, 그 좋은 취지에 이끌려 사람들이 ‘위시 리스트(wish list)’ 이상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겠구나 하긴 했다. ‘국민과의 소통’과 ‘청와대 개방’이란 취지는 누구도 반대 못하는 명분이고, 시대 흐름과도 맞았다. 2012년에도 문재인 후보 측이 내놓았지만 주목받지 못했고, 2017년에는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전 정권의 완벽한 소통 부재, 시민 개개인을 우습게 보는 권위주의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장 파고든 공약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으로선 성공 품목이었다.

노태우의 ‘보통사람들의 시대’, 정주영의 ‘반값 아파트’, 노무현의 ‘수도 이전’ 등은 후보 시절 꽤 성공한 공약들이다. 노무현은 수도 이전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고 했고, 노태우는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니며 보통사람임을 내세웠다. 갑자기 하려니 가방 들고 나서는 걸 자주 까먹어 비서가 얼른 찾아와 쥐어준 적도 많다고 했다. 훗날 최측근에게 그 가방에 뭐가 들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뭐가 들어 있긴, 손수건 하고 잡동사니 서류하고 그런 것들….”

광화문 이전이 실행됐다면 경호나 의전, 예산도 문제지만 광화문 주변 식당 영업이나 사무실 출퇴근 등 일상 생활에서 겪을 일반인들의 불편이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란 건 뻔하다. 경호나 의전 수준을 대폭 축소한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이런 축소를 경호처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애당초 비현실적인 공약이다. 공약을 만든 이들도 광화문 집무실의 현실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게다. 몰랐다고 한다면 현실감이 없거나, 자기최면을 걸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보다는 차라리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이 더 쉬웠을 거다. 대선 때 대중영합주의적 공약은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악마와 제휴하는 것’과 비슷하다.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의 설명을 들으면 더 실망스럽다. 옮겼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를 “풍수상 불길한 점”이라고 또 얘기했다. 미국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지 50년이 지났고, 지난주 중국은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탐사선을 착륙시켜 로봇을 운행 중이다. 이런 시절에 내놓는 설명이란 게….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