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거르면 점심·저녁 폭식
결국 과체중·비만으로 연결
당뇨병·위염 발병 위험 커져
새해 건강 약속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정작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 계획도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되도록 세우는 게 좋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한두가지 건강주제를 정해 연초부터 그것만큼은 반드시 지키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
국민일보는 일상에서 작심삼일이 되기 쉬운 7가지 건강 이슈를 정하고 이슈별 행태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 개선 및 실천 방법을 알아보는 ‘새해 건강약속, 이것만은 꼭!’ 시리즈를 시작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종합건강검진센터 및 코호트연구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올해로 직장생활 21년째인 유모(48)씨는 자취생활을 했던 대학 때부터 아침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려했고, 아침식사를 챙겨주는 이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아침 거르는 습관이 굳어졌고 이런 생활은 결혼 후에도 이어졌다. 맞벌이 아내 역시 이른 출근으로 남편의 아침을 따로 챙기지 않는다. 초등학생인 아들도 학교시간에 쫓겨 아침을 먹지 않거나 빵으로 때울 때가 많다. 반면 저녁 늦게 온 가족이 치킨 등 야식을 시켜먹거나 군것질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씨 같은 ‘아침결식 가족’은 한국사회에서 흔한 모습이다.
몇 년 전부터 아침 식사와 건강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일부 직장, 학교 등에서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보건당국이 매년 시행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봐도 그렇다. 우리 국민이 아침식사로 섭취하는 에너지비율은 2005년 21.2%에서 2017년 15.9%로 줄었다. 반면 아침 결식률은 같은 기간 19.9%에서 27.6%로 오히려 늘었다. 국민 10명 중 3명 정도는 아침을 굶고 있다.
대다수는 빠른 출근(등교)시간, 수면시간 확보, 준비하기 번거로움 등을 아침 결식의 이유로 꼽는다. 심지어는 ‘밥 먹기 귀찮아서’라고 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1인 가구와 혼밥족이 늘면서 아침을 먹지않는 경향은 더욱 가속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아침식사를 거르면 건강에는 나쁜 영향을 준다. 살이 빠지기는 커녕 오히려 비만을 초래하고 당뇨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근래 많이 나오고 있다.
독일 당뇨병센터(DDZ) 연구팀은 최근 미국영양학회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아침을 거르는 사람은 아침을 먹는 사람에 비해 2형(성인)당뇨병 발생률이 평균 33% 높았다고 밝혔다. 9만6175명이 참여한 6개의 연구논문을 종합 분석한 결과다. 1주일에 단 하루 아침을 거르는 사람도 꼬박꼬박 챙겨먹는 사람에 비교해 당뇨병 위험이 6% 높았다. 매주 4~5일 아침밥을 건너뛰는 경우 이런 위험은 55%까지 치솟았다.
강북삼성병원 영양팀 김보영 과장은 7일 “아침식사를 안 하면 점심과 저녁에 과식과 폭식을 하거나 간식을 더 먹게 된다. 세끼 나눠 먹는 것보다 한꺼번에 많이 먹게되면 체내에 지방이 축적되고 에너지 대사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같은 병원 내분비내과 박철영 교수도 “결국 하루 전체의 칼로리 섭취량은 오히려 늘어나 과체중·비만으로 이어지고 혈당을 급상승시킨다”면서 “크게 올라간 혈당을 내리기 위해 몸에서의 인슐린 분비가 급증하고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세포의 민감도가 떨어지는 ‘인슐린 저항성’이 심해져 결국 당뇨병 위험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날 저녁이나 밤에 군것질, 야식을 많이 하는 습관이 아침 결식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보영 과장은 “밤늦게 높은 열량의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 아침에 공복감, 즉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저녁 7시 이후 식사량이 하루 전체 섭취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야식 증후군’에 해당된다면 아침 결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아침식사를 하지 않으면 하루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섭취하기 어려워 빈혈이나 골다공증이 발생할 수 있고 면역력도 저하된다. 두뇌활동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이 안돼 학업성취도와 업무 효율성도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어린시절부터, 새해초에 아침식사 습관을 길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보영 과장은 “특히 아침식사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키기 어렵다”면서 “그 보다는 전날 저녁에 덜 먹고 줄여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약간 배고픈 듯한 상태로 자는게 다음날 아침식사 가능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아침은 전날 간편하고 손쉬운 음식으로 미리 준비해 놓는 게 좋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건강실천팀 양윤희 수석 전문원은 “시간이 부족할 때는 전날 도시락을 미리 준비해 놓거나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학교 혹은 직원식당을 이용하는 것도 아침을 굶지않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아침 식사를 빼먹지 않는 습관과 아울러 식사는 가급적 싱겁게 천천히 해야 한다. 강북삼성병원 코호트연구소 유승호 교수팀이 최근 건강검진자 10만여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하루 나트륨 섭취량이 가장 높은 군은 가장 낮은 군에 비해 남자는 25%, 여자는 32%나 비알코올성 지방간 위험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 교수는 “나트륨 섭취와 지방간의 연관 메커니즘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만성적인 나트륨 과잉섭취가 지방세포의 크기와 저장 지방을 증가시켜 비만을 유발하고 이 비만이 지방간과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민영양조사결과 국내 성인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점차 감소하고 있으나 여전히 세계보건기구 권고량인 하루 2000㎎(소금 5g)의 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 수석 전문원은 “국이나 찌개 국수 라면 등의 국물은 가능한 적게 먹는 등 일상에서 식습관 변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식사 시간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강북삼성병원 연구팀이 건강검진을 받은 1만여명을 대상으로 식사 속도와 미란성위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더니 식사 시간이 5분 미만인 사람은 15분 이상인 사람에 비해 위염에 걸릴 위험이 1.9배 높았다. 또 5~10분 미만인 경우 1.7배, 10~15분 미만 경우 1.5배 높게 나왔다.
연구팀은 “빠른 식사 속도가 포만감을 덜 느끼게 하면서 과식으로 이어지고 과식하면 음식물이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위점막이 위산에 더 많이 노출돼 위장관계 질환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김보영 과장은 “식사는 15분 이상 시간을 갖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아침밥 먹기 독려 나선 지자체… ‘조식 뷔페’ 서비스도
아침식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 대상으로 아침밥 챙겨먹기 독려에 나서고 있다. 특히 광주 광산구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전국 지자체에선 처음으로 아파트 내에 ‘조식 뷔페’를 만들고 아침밥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해 호응을 얻고 있다. 광주의 다른 구나 청주, 대구 등 다른 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에 나서는 등 확산 추세다.
광주 광산구 아파트공동체팀 채와라 팀장은 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지난해 11월 지역내 아파트 8곳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한 조식 뷔페를 2개월간 600~700명이 이용했다”면서 “맞벌이 직장인부터 학생들까지 하루 30~40명은 고정적으로 온다”고 말했다.
광산구의 경우 전체 인구의 84%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세종시를 빼곤 아파트거주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구민의 평균 연령은 36.4세로 맞벌이 부부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채 팀장은 “아파트 주민이 아침시간을 좀더 여유있게 보내면서 건강한 아침상을 받을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사회적기업 ㈜워킹맘과 함께 출근과 등교시간 짬을 내 아파트 주민이 함께 모여 든든한 아침밥을 먹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조식 뷔페’를 도입했다. 각 아파트의 작은 도서관, 경로당, 주민회의실을 공동 식당으로 리모델링했다.
뷔페식 아침 값은 1인당 5000원, 간편식은 2500원이다. 구는 아파트마다 주민 1명씩을 채용해 식사 준비와 정리, 배달을 돕고 있다. 이웃 일본에선 조식을 제공하는 초등학교가 각지에서 늘고 있다. 학생들의 ‘학력 향상’을 위한 것이 이유다. 니혼TV 등에 따르면 히로시마현은 전국 처음으로 초등학교에서 조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