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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사는 사람”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조합 사무실 앞 거리에서 손을 모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1년 탈북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영접한 그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크리스천의 최우선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송지수 인턴기자


차디찬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세상이 돌았다. ‘이렇게 죽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죽기는 쉽지 않았다. 그럴 힘조차 없었다. 1997년 1월 북한 양강도 혜산역에서 먹지 못해 쓰려졌던 만 스물한 살짜리 여성이 20년 만에 통일 조국을 꿈꾸는 기도의 일꾼으로 거듭났다.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이야기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아온 그를 10일 서울 용산구 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탈북과정에서 하나님을 영접하면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했다.

“언제나 절 지켜주신 하나님”

그는 함경북도 김책시 태생이다. 공부를 잘했고 당찬 소녀였지만 배고픔은 이길 수 없었다. 22년 전 혜산역에서 쓰려졌을 때 한 여성이 다가와 중국에 가면 돈을 잘 번다고 했다. 어차피 죽을 바엔 밥이라도 실컷 먹자는 심정으로 탈북을 결심했다.

“97년 설에 꽁꽁 언 압록강을 건넜어요. 경비 교대시간을 노렸는데 들통나면 총살이라는 두려움에 추운지도 몰랐죠.”

중국에서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험한 일을 많이 겪었다. 중국 동포 폭력배에 납치된 적이 있었고, 탈북 3년 만에 공안에 잡히기도 했다. 고비가 있었지만 언제나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그때마다 어렴풋이 ‘내게 무슨 다른 일이 맡겨진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2001년 재탈북에 성공, 태국을 거쳐 이듬해 한국에 왔다. 한국을 최종 목표지로 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 없는 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배들이 절 잡아놓고 ‘널 죽여 하수구에 버려도 누가 널 찾겠냐’고 협박했어요. 조국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때 꼭 한국으로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태국의 한 한인교회에 머물며 한국 입국을 준비했다. 담임목사는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려면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했다. 한국행이 간절했으니 모든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다 새벽기도 중 하나님을 영접했다.

“꿈을 꿨을까. 하나님께선 언제나 제 곁에 계셨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굶다 쓰러졌을 때나 공안에 잡혔을 때도, 재탈북하다 기차에서 잡혔던 순간이나 보위부 경찰이 절 조사하던 순간에도 주님은 절 지켜주셨어요.”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깬 뒤 통곡했다.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다. 주님 음성을 들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였다.

“원래 목표는 3개였어요. 첫 번째는 한국 국적 취득이고 두 번째는 통일되면 쌀 창고 크게 지어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이었어요. 세 번째는 절 괴롭혔던 북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는데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자고 마음을 바꿔먹었죠.”

“진짜 통일은 예수 사랑과 용서로”

원수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사랑을 자신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 들어와선 열정적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감리교신학대에 다닐 땐 동반 자살하려던 청년들을 돌봤다. 잘 사는 남한에서 왜 이렇게 죽으려는 청년들이 많은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살사이트에 접속해 쪽지를 주고받으며 아이들을 만났어요. ‘나도 힘들게 살아봐서 알아. 맛있는 밥이나 한번 먹자. 그냥 죽으면 억울하지 않니’라고 설득했죠. 낮엔 공부하고 밤엔 아이들 만나 기도해 주었죠. 자살하려던 아이를 처음 만날 때 그 아이 뒤에 계신 예수님이 보였어요. 순간 눈물이 났어요. 죽어가는 아이들 곁에 주님이 계신다고 생각했죠.”

넉넉진 못했지만 가진 돈을 털어 집 없이 떠돌며 자살 생각하던 아이를 위해 고시원을 잡아주고 생활비를 넣어주기도 했다. 그에겐 실천 없는 사랑이란 거짓이었다.

“크리스천은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남을 위해 살아야죠. 희망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늘 있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야 해요.”

2005년부터 10년간 통일을 위한 중보기도 사역에 앞장섰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은 분단 조국을 위한 말이라 여겼다. 수십 년간 등 돌렸던 남과 북이 하나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용서를 통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2016년부터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직함은 그럴싸했지만 일은 고됐다. 북향민(탈북자) 사업가들의 자립을 돕는 등 통일을 대비해 각종 사업을 꾸리고 있다. 이미 1년 연임했는데 지난 2년간 조합 사업들을 적극 알리고 수익도 점차 내면서 1년 더 이사장직을 맡기로 했다.

“오는 5월 박사 학위 마치면 호주에서 영어공부도 하고 선교 활동도 해볼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하나님께선 제게 ‘예영아, 모두가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한다. 그럼 내 일은 누가 하니?’라고 응답하시더군요. 울면서 순종할 수밖에요. 힘들어도 주님 일이라면 감사히 맡겠습니다. 제 목숨을 빚진 것만 해도 갚을 수 없으니까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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