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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배병우] 김용 世銀 총재의 못 다한 꿈



한국계 미국인 김용(미국명 짐 용 김) 세계은행 총재의 강연에는 한국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1950년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이 선진국에 올라선 것을 예시하며 “제3세계에 만연한 질병과 빈곤 극복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역설한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보냈던 유년기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온 자신의 부모의 경험, 그리고 자신에게로 이어진 꿈을 엮어 펼치는 얘기는 감동적이다.

2017년 테드 강연에서는 한국에서 살던 3살 때 색동옷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다. 그러면서 당시 세계은행 총재가 한국에 왔고, 그때 한 소년이 “나는 커서 세계은행 총재가 될래요 했다면 사람들은 실없는 아이라고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게 됐느냐”고 반문해 큰 박수를 받았다.

당초 김 총재가 세계은행 폐지까지 주장했던 이 국제기구의 최대 비판자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는 1987년 하버드의대 동창 폴 파머 등과 함께 비영리 보건기구 ‘건강의 동반자(Partners in Health)’를 창설해 아이티 등에서 10여년간 결핵과 에이즈 예방·치료 활동을 했다. 당시 체험을 녹여 2000년 저술한 ‘성장에 목숨걸기(Dying For Growth)’에서 김 총재는 신자유주의와 이 노선에 충실했던 세계은행 정책이 개발도상국의 중산층과 빈곤층을 더 가난하고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강력 비판했다.

김 총재가 임기를 3년 이상 남긴 채 7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다음 달 1일 세계은행을 떠나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춘 민간기업에 합류할 계획이다.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개인적 사정으로 떠나는 것이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밀려난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적인 압력을 넣지는 않았을지라도 정책 방향 차이 등으로 인한 김 총재의 부담이 갑작스러운 사임 이유로 보인다.

외교부 관계자는 “세계은행 총재는 중도에 사임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최영진 전 주미 대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세계은행의 정책 방향과 트럼프 행정부가 충돌한 게 사임 이유일 것”이라며 “김 총재가 한국에 큰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 외교로서도 손실”이라고 말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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