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8일은 그가 35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베이징에 도착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담을 하고 환영 만찬을 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 날짜와 생일이 겹쳐 시 주석과 생일파티를 겸한 만찬을 함께한 셈이다. 게다가 올해는 북한과 중국이 1949년 10월 6일 수교를 한 지 70주년을 맞는 해다. 김 위원장은 새해 신년사 발표 직후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북·중 ‘밀월’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미·중 무역협상이 동시에 이뤄진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회담을 한 인민대회당과 미·중 무역협상이 진행된 상무부 청사의 거리는 불과 1.4㎞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국이 미·중 무역협상 기간 김 위원장을 초청해 북·중 밀착 구도를 부각시키면서 미국에 시위를 하는 제스처란 해석도 나온다.
중국은 지난해 1월 김 위원장이 특별열차를 타고 베이징을 방문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경호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등 국가원수급 의전을 펼쳤다.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 등 방중단을 태운 북한 전용열차는 전날인 7일 오후 평양을 출발해 8일 오전 10시55분쯤(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전날 밤 중국 단둥 기차역을 통과한 뒤 선양역에 도착하자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 중국 인사들이 영접했다.
이어 베이징역에선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급 인사가 직접 마중을 나왔고, 김 위원장 일행의 차량은 수십대의 사이드카 호위를 받으며 역을 빠져나갔다. 김 위원장은 이어 오전 11시16분쯤 숙소인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과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을 하고 만찬과 공연 관람 등을 같이하며 극진히 대우했다. 회담은 불과 1시간 만에 끝나고 만찬을 시작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3월 김 위원장 첫 방문 시에도 ‘황제급 의전’을 제공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시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가장 호화로운 내부 장식으로 유명한 진써다팅(金色大廳)에서 국빈 만찬을 열었다. 특히 김 위원장에게 이틀간 환영 만찬과 환송 오찬 등 두 차례 연회를 하고, 댜오위타이의 양위안자이(養源齎)를 직접 소개하는 등 최대한의 예우를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방중은 그의 생일과 북·중 수교 70주년이 겹쳐 양측이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1984년 1월 8일생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35번째 생일을 시 주석과 함께 맞게 됐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취임한 2012년 이후 한 차례도 그의 생일 행사를 개최한 적이 없다. 8일은 북한의 공휴일도 아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은 각각 태양절(4월 15일), 광명성절(2월 16일)로 부르며 공휴일로 지정했다.
김 위원장이 특별열차를 이용한 것은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아 과거 특별열차를 이용했던 선대 김정일 위원장의 행보를 재연하며 북·중 우의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3월 1차 방중 때는 특별열차를 이용했지만 5월 2차, 6월 3차 방중에는 전용기를 이용했고 방문기간도 1박2일로 짧았다.
북·중 정상은 상호 방문과 답방을 주고받은 외교 관례를 다시 깨고 시 주석이 답방을 하지 않았는데도 김 위원장이 4차례나 일방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파격으로 양국의 우의를 과시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하반기 답방을 적극 검토했으나 북·미 협상 교착과 미·중 갈등으로 여건이 악화되자 포기했었다.
김 위원장이 첫날 일정을 마치고 9일 시찰지를 어디로 택할지도 관심이다. 북측 방중단에는 김 위원장의 핵심 참모들이 총출동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 건설’을 강조한 만큼 이미 방문했던 중관춘 등 베이징 인근을 넘어 톈진, 상하이 등 원거리 일정을 소화하며 중국의 발전상을 시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