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없는 ‘지배’ 헛수고… 밀집 수비 깰 기술자 누구냐



“상대가 수비 라인을 내리고 선수를 많이 배치해 공간 창출이 어려웠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겠다.”

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 감독은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첫 무대였던 필리핀전에서 1대 0 신승을 거둔 후 부족한 점을 인정했다. 수비수를 잔뜩 배치해 뒷문을 꽁꽁 잠근 필리핀을 상대로 대표팀은 위협적인 기회를 좀처럼 만들지 못했다. 80%가 넘는 점유율을 가져갔지만 속도가 느렸고, 날카로웠어야 할 크로스와 패스는 부정확했다. 필리핀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 앞에서 벤투 감독이 내세웠던 ‘공격’과 ‘지배’의 축구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공격은 없이 지배만이 남았다.

밀집 수비 파훼법은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오랜 숙제였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아시아팀들이 수비 중심의 전술을 들고나왔을 때 대표팀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도중에 역습을 허용하며 ‘침대 축구’ ‘늪 축구’에 번번이 발목을 잡히곤 했다. 이번에도 벤투호가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남은 경기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 상대의 단단한 수비를 깨뜨릴 예리하고 날카로운 ‘기술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비적으로 나올 키르기스스탄과 중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안정적인 볼 소유를 넘어서 확실한 득점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 위험지역에서 수비수 1~2명을 제칠 수 있거나 페널티박스 안으로 정확한 패스를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9일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상대 뒷문으로 파고들 수 있는 효율적인 공격진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벤투 감독도 부임 이후 꾸준히 기술력을 주요 자질로 강조해왔다. 지난해 9월 첫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는 “신장이나 체격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라며 “공격에서 적극적이고 과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한 선발 잣대”라고 확언했다.

이러한 기조 아래서 중용돼 온 황인범에 거는 기대는 크다. 작은 체격이지만 탈압박에 능하고, 날카로운 전진 패스로 공격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해설위원은 “황인범의 기동력과 패스는 전체적인 경기 속도를 높인다. 공격 2선 라인에 필요한 선수”라고 평했다. 필리핀전에서 오른쪽 햄스트링을 다쳐 출전하지 못하는 기성용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황인범의 몫이다.

1차전에서 맹활약한 이청용은 주요 카드다. 필리핀을 무너뜨린 황의조의 결승 골은 그의 발끝에서 나온 패스로 시작됐다. 한 해설위원은 “공격 템포를 죽이지 않고 센스 있는 플레이를 펼치는 데는 이청용만한 선수가 없다”며 “선발 기용은 필수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희찬은 별명인 ‘황소’ 같은 묵직한 돌파력으로 상대 수비 라인을 파괴할 수 있다. 패스의 세밀함에서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수비수를 괴롭히는 그의 역할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아시아팀들이 쉽게 막아내기 힘든 유형의 공격수이기도 하다.

부상으로 낙마한 나상호를 대신해 깜짝 선발된 이승우도 조커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이승우는 누구보다 자신감 있게 드리블 돌파 등 개인기를 선보여왔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입증했듯, 기회만 주어진다면 약팀을 상대로 충분히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은 9일(한국시간) 열린 아시안컵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 3대 2로 신승했다. 무난하게 이길 것으로 예상됐던 일본은 전반 26분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후반 들어 오사코 유야의 연속골 등 3골을 뽑아내며 3-1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페널티킥을 허용해 한 점 차까지 쫓겼으나 그대로 경기를 끝마쳐 승점 3점을 확보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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