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 아침엔 남자친구한테 전화 안 걸어?”
출근길 시동을 걸자 자동차에 있는 인공지능(AI) 비서가 인사를 건넨다. 자동차는 내 생활습관까지 알고 있다. 오늘 평소보다 심장박동수가 빠른 것 같다고 디지털 콕핏의 스크린 화면에 메시지가 뜬다. 자동차는 내가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와 연결돼 건강관리도 해준다. 같은 지역으로 함께 출근하는 친구의 집 앞에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 지겨워하는 내게 자동차는 풍선 터트리기 게임을 추천한다. 화면에서 풍선이 보이는 위치에 맞춰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찌르면 풍선이 터진다.
이것은 우리가 곧 자동차 안에서 하게 될 일이다. 자동차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카 투 라이프(Car to Life)’는 바로 이런 개념이다. 자율주행차에 탑승한 운전자가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상황을 뜻하는 ‘승객 경제’는 미래 모빌리티에서 주목받는 개념이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9’는 자동차가 이제 운송수단이 아닌 하나의 생활공간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동차가 IT와 접목되면서 편안한 휴식공간이자 움직이는 사무실로 변신하는 것이다. 올해 CES의 주요 트렌드 중 하나는 모빌리티 안에 탑재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그 속에 들어가는 콘텐츠다.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인 인포테인먼트는 새로 출시되는 자동차를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요소가 됐다. AI 기술이 적용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운전자의 동작이나 음성, 표정을 감지한다. 운전자는 스케줄이나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을 받거나 영화와 게임 등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의 여러 전시관에선 운전자의 손짓으로 자동차를 제어하는 기술이 시연됐다.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조 제어를 하거나 즐겨 쓰는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현대·기아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진화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소개했다.
콘텐츠가 중요해지면서 자동차 회사와 정보기술(IT) 회사, 콘텐츠 제작사 등 업종 간 경계는 허물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인수한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과 공동 개발한 ‘디지털 콕핏 2019’를 CES에서 공개했다. 6개의 디스플레이로 이뤄진 디지털 콕핏을 통해 탑승자들은 고화질의 영화, 영상 등 콘텐츠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IT 기업 인텔과 영화제작사 워너브러더스는 콘셉트카를 통해 자율주행 시대의 몰입형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줬다. 콘셉트카는 ‘2019 BMW X5’ 모델을 자율주행 차량으로 개조한 것이다. 차에 타자 옆면 창으로는 배트맨의 고향인 고담시 풍경이 지나가지만 실제 도로에 폐쇄된 도로가 나타나자 알프레드 집사가 나타나 이를 경고한다. 마시 밀러 인텔 자동차전략마케팅부문 담당은 “자율주행 차량의 부상은 사람들의 시간 활용 방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하는 전조”라면서 “콘셉트카를 통해 자동차가 어떻게 새로운 공간으로 변할지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라스베이거스=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