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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잔재 없애겠다” 약속, 3년여 만에 지킨 광주시

사법·경찰·교육 등 각 분야 친일인사 156명과 관련된 친일 잔재물이 광주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광주교대 산학협력단 연구결과 확인됐다고 9일 광주시가 밝혔다. 사진은 광주 도심에서 발견된, 일제 강점기 군사용 동굴. 뉴시스


광주시가 친일인사 선정비(善政碑) 철거 등 일제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수년간 소홀히 해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15년 시민단체 등의 빗발치는 요구와 부정적 여론에 밀려 친일잔재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오랫동안 손을 놓아왔다는 것이다.

광주시는 “친일잔재 조사결과와 사후 활용방안에 대한 용역 최종 보고회를 전날 개최했다”고 10일 밝혔다. 광주교육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광주·전남 출신 친일인물의 잔재물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조사결과 광주·전남에는 지역 출신 친일인사 156명의 비석과 비각, 누정현판 등이 수두룩한 것으로 밝혀졌다. 친일음악가가 만든 노래를 교가로 사용 중인 학교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의 제1호 공원인 광주공원 내 향교 옆 사적비군에는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인 이근호(1861~1923)의 공적비가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장군 공적비와 생뚱맞게 뒤섞여 세워져 있다. 옆에는 조선 말기 무신 출신으로 한일합병 직후인 1910년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윤웅렬(1940~1911) 등의 공적비도 있다.

100년 넘게 건재한 선정비를 발견한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소 관계자는 “1950~60년대 도시개발 과정에서 친일 선정비를 광주공원 공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유물로 착각한 것 같다”며 “비문에 새겨진 희미한 글자의 탁본을 떠서 일일이 컴퓨터 화면에서 확대해 친일행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광주공원은 5·18민주화운동 사적비와 4·19희생자 영령추모비 등이 들어선 호남의 정신적 뿌리다.

항일독립군 토벌에 전위대 역할을 한 간도특설대 핵심 간부 출신으로 친일행적이 드러난 김백일(1917~1951) 전 육군 제1군단장의 이름을 딴 지역 도로와 공원 등도 조사됐다. 서구 마륵동 탄약고 동굴, 광주학생운동독립기념회관 지하동굴, 일신방직 등의 건물도 친일잔재 시설로 파악됐다.

광주시는 친일잔재 전수조사는 지자체 중 전국 최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는 2015년 당시 친일행위가 증명된 인사들의 잔재를 서둘러 철거하고 대신 단죄비(斷罪碑)를 세워 역사교육장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가 지난해 용역착수 때까지 3년여동안 수수방관만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뒤늦게 친일 잔재 현황을 파악하는 등 첫걸음을 뗐지만 실제 철거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친일파 흔적 지우기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객관성 확보와 검증절차에 따른 것으로 친일 행적이 명확한 인물들의 선정비부터 철거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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