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결국 대북 제재의 해결은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빠른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보다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그런 조치를 하는 대로 계속해서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고 독려하기 위한 상응 조치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한 발 더 나아간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대북 제재 일부 해제라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중재안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그러면서 북·미 간 협상 접점을 찾기 위한 구체적 조치의 예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폐기, 미사일 생산시설 폐기, 영변 이외의 핵 단지 폐기를 들었다. 이들 폐기 조치가 과거 북한과의 협상에서 실패했던 미국의 오랜 불신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해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 영변 핵시설의 조건부 폐기를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정의하는 비핵화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고 강조했다. 정부 소식통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더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촉구하는 동시에 미국에는 북한을 믿고 단계적 보상책을 제공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시작된 올해 비핵화 정상외교 로드맵도 밑그림이 그려졌다. 이르면 다음 달 개최로 예상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4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방중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에도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먼저 이뤄지고 나면 그 이후에 김 위원장의 답방은 좀 더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과 북·러 정상회담이 연달아 이뤄지며 비핵화 의제뿐 아니라 대북 제재 해제 논의가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대북 제재에 막혀있던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에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 체결 구상 역시 여전히 유효한 카드라고 문 대통령은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의 끝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하고, 그 평화협정에는 전쟁에 관여했던 나라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종전선언 시기는 조정됐지만, 프로세스는 살아 있다”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주한미군·유엔군사령부의 지위, 역할과는 별개라는 점도 거듭 밝혔다. 그는 “전적으로 한·미 양국의 결정에 달려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김정은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전선언 이후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또 괌·일본 등에 배치된 미국 전략자산에 대해선 “북·미 간 비핵화 대화 속에 상응 조건으로 연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