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신문사에서 주최한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표절 시비가 일어났다. 한 블로그 글과 대동소이한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처음에는 “과학적 사실”이라는 이유를 들며 표절을 부인했지만 논란이 커지자 결국 당선을 취소했다. 이와 유사하게 씁쓸한 사건이 지난해 공연계에서도 2건이 있었다. 2건 모두 블로그 글 표절 논란이었고, 소송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법적 공방까지 가지 않은, 그보다 더 많은 표절 시비와 사례들이 오랫동안 공연계에 논란을 키워왔던 것이 현실이다.
공연 관련 언론 매체들의 비슷한 기사는 대부분 취재 없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쓴 데서 비롯된다. 공연장에서 나눠주는 프로그램 노트나 평론이란 제목으로 매체에 기고된 여러 글 또한 독창성을 의심받은 지 오래다. 지난해 필자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했던 ‘음악평론의 이론과 실제’ 수업 중 한 학생은 자신이 읽은 최근 발표된 음악 평론과 프로그램 노트들을 거론하며 “대부분 한글로 된 글을 서로 베끼거나, 블로그 글이 아니면 영어 텍스트를 번역해 표절했다”며 “기성세대의 글들을 대체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반면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존중하는 윤리의식은 아직도 제자리라는 것이다.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지식을 찾아보기 힘든 현대에 독창적인 글을 쓰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 이럴 때 사용하는 방법이 원문 저자를 밝히는 ‘인용’이다. 해외 공연계는 이 ‘인용’의 윤리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반면 국내 공연계 출판물들은 심각할 정도로 둔감하다. 심지어 국·공립 기관이 주최하는 공연의 프로그램 북에서조차 저자나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작품 해설을 가끔 볼 수 있다. 하물며 블로그 글은 그냥 가져다 써도 되는 잡문으로 취급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춘문예 해프닝이 일어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경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몰래 베끼는 자가당착의 논리를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둘째, ‘참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원고료도 표절 문화를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지난해 말 공연예술비평연구활성화지원금 심사를 하면서 지원금을 신청한 다수 매체들의 예산 목록에 원고료와 같은 기본적인 인건비가 아예 누락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수의 음악, 연극, 무용 필자들이 수준 이하의 원고료조차 받지 못한 채 글을 기고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타소득 원천징수비율이 4.4%로 오르면서 그나마 받는 원고료의 실수령액은 더욱 낮아졌다(이런 와중에 지난해 초과 세수가 25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아무리 실력 있는 필자라도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노력이 부족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 두 가지의 근본 배경은 ‘지적 노동의 경시’다. 집필을 포함한 다수의 문화예술 관련 경제 활동을 ‘자기만족을 위한 취미생활’로 여기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필요 없다고 여기는 풍조가 계속되는 한 이러한 악순환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