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눈에 띄는 신제품 전시도, 새로운 미래 비전 발표도 예년만큼 없었다. 대신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이 보다 구체화돼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가까워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CES를 가장 빛낸 제품은 단연 LG전자의 시그니처 롤러블 TV R이었다. TV는 화면이 당연히 있다는 전제를 깬 혁신적인 제품으로 신기술을 선보이는 CES의 성격에 가장 들어맞는 제품이었다. 시그니처 롤러블 TV R은 올해 CES 최고의 TV로 선정됐고, 50여개 상을 휩쓸었다.
전시관은 신제품보다는 TV부터 자동차까지 플랫폼을 어떻게 연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결에 핵심적 역할을 할 AI 플랫폼은 구글과 아마존 2강 체제가 굳어졌음을 CES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구글과 아마존은 각각 전시관을 차리고 자기 진영에 우군을 끌어들이는 데 집중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에서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했다.
자동차 분야에선 ‘자율주행 시대에 운전자는 무엇을 할까’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보여줬다. 과거에는 자율주행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를 보여줬다면 올해는 자율주행 시대 운전자의 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IT 업체와 자동차 업체들이 제시한 미래는 차 내부 전체를 디스플레이로 채우고 증강현실(AR) 등을 이용해 이동 중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운전자가 운전을 하지 않게 되면 그 시간에 게임을 하고 영상을 보고, SNS를 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자동차를 IT 디바이스로 변모시킨 것이다. 자동차는 이제 IT 플랫폼이 되고 있다.
AI를 탑재한 로봇의 등장은 가장 큰 변화였다. 박일평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기조연설 때부터 ‘클로이’ 로봇이 무대에 올라 인간의 삶에 로봇이 들어올 때가 됐음을 보여줬다. 특히 로봇을 활용한 ‘헬스테크’가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건강을 점검하고 노인의 거동을 돕는 로봇을 선보이며 로봇 활용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중국 업체들은 올해엔 눈길을 끌지 못했다. 참가 업체 수도 지난해보다 20%가량 줄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 업체들이 몸을 움츠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웨이는 올해 스마트폰, 노트북 등 일부 제품을 전시하고 TCL, 하이센스, 하이얼, 창훙 등은 신제품 8K TV을 선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중국 업체가 경쟁에서 뒤처진 건 아니다. 오히려 기술 격차는 더욱 줄었다. 전자업체 관계자는 “TV의 경우 5년 전만 해도 최소 2년 차이는 난다고 했는데 지금은 1~2년 안쪽”이라고 경계했다.
특히 로봇 분야에서 중국의 약진은 눈에 띄었다. 중국 정부는 로봇산업 육성을 위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올해 CES에 로봇 분야 전시 기업의 상당수가 중국 업체였다. AR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AR을 활용한 게임, 체험 등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곳은 중국 기업들이었다. 향후 몇 년 안에 로봇, AR 등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면 중국 업체가 주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라스베이거스=김준엽 임세정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