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김은희 김순옥 문영남 송재정…. 스타 작가들은 많아도 감독은 대개 주목받지 못했던 드라마계가 변하고 있다. 연출력을 무기 삼아 색깔과 깊이를 더한 드라마들이 잇달아 선을 보이면서다.
단 2회 만에 월화극 정상을 넘보는 ‘왕이 된 남자’(tvN·위 사진)가 대표적이다. 드라마는 12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의 리메이크작으로 화제가 됐다. 여진구 김상경 권해효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합류한 작품으로도 관심이 높았다.
그에 못지않게 눈길을 끈 건 연출을 맡은 김희원 감독이었다. 전작 ‘돈꽃’(MBC·2017)에서 긴장감 넘치는 화면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던 그다. 김 감독은 이번 작품을 두고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광대놀음 같은 역동적 시퀀스와 광활한 자연 등으로 극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실제 드라마는 첫 화부터 작심한 듯한 장면들로 90분을 농밀하게 메웠다. 더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가는 광대 하선(여진구)의 뒤로 펼쳐진 광활한 갈대숲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다채로운 한복 차림과 궁궐의 모습, 향락에 젖은 왕의 목욕 장면 등은 원작 이상의 퀄리티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숱한 우연에 기댄 스토리로 호불호가 갈리는 ‘남자친구’(tvN)도 연출만큼은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는 경우다. 짙은 색감과 명암 활용이 돋보이는 장면 구성을 통해 쿠바 현지의 로맨틱함과 송혜교 박보검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연출을 무기화한 극의 등장은 연간 100편가량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한국 드라마 시장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며 높아진 시청자들의 수준에 부응하기 위해선 작가의 힘뿐 아니라 연출가와의 협업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연출은 뛰어난 미장센을 넘어 극의 설득력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20%(닐슨코리아)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신화를 쓰고 있는 ‘SKY 캐슬’(JTBC·아래 사진)의 성공엔 연출의 몫도 컸다. 떨리는 손 하나까지 잡아낸 섬세한 심리묘사는 인물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자살 같은 자극적 설정에도 ‘막장’과 결을 달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공 평론가는 “전개를 예측할 수 없도록 장면을 배치한 영리한 연출이 돋보였다”고 덧댔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아직 케이블이나 종편 드라마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는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균형이 중요하다. 작가가 우선되고, 이후 PD가 정해지는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으로는 시청자들의 눈을 만족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