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가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셧다운 장기화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난달 22일 0시(현지시간)부터 시작됐던 이번 셧다운 사태는 13일을 맞으며 23일째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역대 최장 셧다운을 기록한 정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됐다. 종전까지 최장 기간은 1996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빚어졌던 21일이었다. 하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셧다운 최장 신기록은 경신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포스트(WP)는 셧다운 신기록의 주범으로 협상에서 타협보다는 오로지 승리만을 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벼랑 끝 전략’을 지목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 미 의회를 찾아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점심식사를 했던 자리에서 20분 동안 홀로 “승리”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북한에 승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시리아 내전과 중국과의 무역분쟁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기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뭉치고 있으면 멕시코 장벽을 둘러싼 이민문제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비난의 화살을 맞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 지도부는 멕시코 국경장벽이 비인도적이며 불법 이민을 막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노(No)’만 외치는 민주당의 답답한 리더십을 향해서도 불만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트위터 글에서 “민주당은 워싱턴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민주당은 15분이면 셧다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최대 관심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지 여부다. 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국가적 위기라고 판단될 경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행정 권한을 확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의회 승인 절차 없이 멕시코 장벽 건설 예산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그러나 공화당 내에서도 “의회 권한 침해”라는 반발이 터져 나온다. 멕시코 장벽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국가비상사태 사유에 해당되는지를 놓고 법리 공방도 빚어지고 있다. CBS방송이 미국 성인 147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7%는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의견은 33%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당장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 뺐다. 그러나 그가 국가비상사태 선포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셧다운 장기화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비핵화 협상의 주무부처인 미 국무부에서는 셧다운 여파로 필수 인력을 제외한 직원들이 무급 휴가를 간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많은 인력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2월 말·3월 초’ 개최 시나리오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 해결에 집중하느라 2차 회담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이기 때문에 셧다운 사태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개최가 확정되고 인력을 집중 투입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셧다운 중에도 출근하는 필수 인력들이 북한 비핵화 협상을 챙기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