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가동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조만간 개최될 북·미 간 핵협상에서도 개성공단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성공단 재가동은 촘촘히 쌓인 대북 제재와 직결돼 있어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달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는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 임금으로 현금 대신 현물을 지급하는 방안이 공개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북한에 ‘벌크 캐시(대량현금)’ 유입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를 피해가기 위해서다. 북한이 이를 수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가능성은 있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언급한 만큼 현물 지급 제안도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며 “과거 곡물 가격이 급등했을 때, 북측이 먼저 곡물로 임금을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이 현물 지급에 합의한다 해도 나머지 대북 제재를 풀어야 개성공단이 다시 가동될 수 있다. 유엔 안보리와 미국은 최근 수년간 대북 제재망을 그물망처럼 쌓아올려 현재는 남북 간 경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북한과의 합작사업 금지는 물론이고, 북한에서 생산한 직물과 의류도 수입할 수 없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 대부분이 의류와 봉제 가공품임을 감안하면 공단이 재가동돼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게다가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을 국내에 들여올 때는 ‘한국산’으로 원산지 표기가 가능하지만, 해외로 수출할 때는 상대국에 따라 ‘북한산’으로 표기해야 할 수도 있다. 이외에 재가동 시 반입해야 할 공장 내 설비와 전자제품, 유류 등도 상당부분 제재 대상이다. 개성공단 재가동 여부는 남북 간 의지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다음 달로 예상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연동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다만 북한이 개성공단 문제를 ‘누구의 승인도 필요 없는 민족 내부의 문제’로 공언해온 만큼 북·미 회담에서 먼저 공식 의제로 내놓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일종의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후 비핵화 및 제재 완화 국면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제재 예외가 비공식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과정이 본격화되면 미국이 상응조치의 하나로 개성공단 제재 예외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단 재가동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개성공단은 유엔 대북 제재에 복합적으로 연관돼 있어 재가동되면 제재의 많은 부분을 허물어뜨릴 수 있고, 중국의 대북 제재 공조 이탈을 일으킬 수 있다”며 “우리 정부도 개성공단 재개가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개성공단은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에 우리의 자본과 원자재를 결합한 것으로 이는 북·중 사업모델이기도 하다”며 “개성공단이 제재 예외를 받으면 중국도 북·중 사업의 제재 예외 인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