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34)씨는 부산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알바노조 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맥도날드에서 라이더(배달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그가 펴낸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이것’이 가리키는 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다. 즉, 이 책은 ‘알바도 직업이다’라는 선언으로 아래는 책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의 시점에서 써 내려간 가상의 편지다.
일단 이런 얘기로 시작해볼게요. 맥도날드 자주 가시나요? 거기서 일하는 알바들 본 적 있으시죠? 알바노동자들 사이에서 맥도날드는 알바계의 삼성으로 통합니다. ‘맥알바’(맥도날드 알바)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고 동경하는 일자리죠. 이유는 간단해요. 맥도날드는 4대 보험에 퇴직금까지 챙겨주고 임금을 떼먹지도 않아요. 주휴수당도 꼬박꼬박 나오지요.
하지만 삼성맨이 그렇듯 맥알바의 노동 강도는 엄청나요. ‘SOC’라는 게 있어요. ‘Station Observation Checklist’의 준말인데 번역하자면 ‘매장에서 지켜야 할 항목들’이에요. 감자튀김에 소금을 뿌릴 땐 20㎝ 위에서 소금 4g을 직사(直射)해야 해요. 고객이 햄버거를 수령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20초를 넘겨서는 안 돼요. 어떤 맥알바는 이런 경험담을 전하더군요.
“빵을 랩지 위에 올려놓는 데까지 25초가 걸려야 한다. 우왕좌왕 빵을 고르고 넣고 랩지를 뒤적거리다가 한 80초가 걸렸다. 트레이너가 모니터 위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25초 표시판을 가리키며 ‘목표는 25초라고. 25초 안에 할 수 있도록 빨리빨리 해야 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맥도날드는 반발할 겁니다. SOC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할 거예요. 하지만 맥알바 입장에선 매니저 눈치를 봐야 하니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으로 여기게 돼요. SOC가 아니더라도 맥알바는 편한 일자리가 아니에요. 언제나 화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죠. 패스트푸드점 알바노동자 80%가 화상을 경험했다는 설문 결과도 있답니다. 맥도날드 대표 햄버거인 빅맥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물가를 비교하는 ‘빅맥 지수’를 들어본 적 있으시죠? 만약 ‘맥잡 지수’로 각국의 노동환경을 비교한다면 한국은 형편없는 점수를 받을 겁니다.
자, 이제 왜 제가 책을 냈는지 설명할게요. 한국에 알바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통계청 자료로 추정해보니 375만명이더군요. 하지만 알바를 ‘직업’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학생들이 용돈을 마련하려고, 주부들이 반찬값을 벌려고 짬을 내 벌이는 밥벌이라고 여기는 게 일반적이에요. 알바노동자는 노동정책을 다루는 책상물림 공무원들이 탁상공론을 펼칠 때 탁상 위에도 오르지 못하는 존재예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알바노동은 노동의 유연화+청년실업+고용 없는 성장이 낳은 새로운 노동시장이라고. 정규직이 제1노동시장이고 비정규직이 제2노동시장이라면 알바노동자는 제3노동시장에 속해 있어요.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이 시장의 노동력을 땔감으로 삼죠.
대표적인 게 편의점이에요. 편의점은 24시간 도시를 밝히는 등대가 됐어요. 이곳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물론 이건 불법입니다) 택배를 받습니다. 그러니 ‘편돌이’나 ‘편순이’로 불리는 알바노동자는 식당 주인, 호프집 알바, 바리스타가 돼야 해요. 만능 엔터테이너죠. 하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어요.
편의점은 ‘근로기준법 위반의 진열대’예요. 무법천지가 따로 없어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데가 한두 곳이 아니고, 면접을 보러 가면 “최저임금도 못 주는데 괜찮겠니”라고 묻는 점주도 한두 명이 아니에요. 야간수당이나 연차수당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죠. 대기업 입장에선 좋을 거예요. 편의점에서 불거지는 어지간한 문제는 점주에게 떠넘기면 되니까요.
무엇보다 힘든 건 ‘진상 손님’이에요(저희는 이런 손님을 ‘손놈’이라고 불러요). 진상 손님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지인한테서 느낀 모멸감을, 가족한테서 받은 상처를 애먼 알바에게 풀어요. 알바를 불가촉천민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대들면 “알바 주제에…”라면서 쌍욕부터 쏟아내죠. 여성 알바는 성희롱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아요. “룸살롱에서 일하게 생겼다” “10만원 줄 테니 나랑 자자”…. 저희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요?
여성 노동자 얘기를 더 이어가볼게요. 2015년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의 여성 고용률은 49.9%예요. 숫자를 늘어놓으면 따분한 이야기가 될 테니 풀어서 설명할게요.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면 2명 중 1명은 취업을 못하고 취직을 하더라도 절반은 비정규직이에요. 비정규직 상당수는 알바노동자죠. 그런데 여성 알바노동자를 구할 때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채용공고에 자주 써먹는 문구가 있어요. ‘용모단정’. 이게 뭐겠어요? 남성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뽑겠다는 거예요. 많은 여성 알바노동자에게 강요되는 건 일터에서 항상 미소를 지으라는 거예요.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는 알바노동자에게 아예 ‘미소지기’라는 이름까지 붙였어요. ‘CGV 미소지기(여) 용모·복장 기준’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요. “붉은색 계열의 립글로스를 발라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런 기준이 있는 걸까요. 어떤 알바노동자는 이런 답변을 들었다고 해요. “입술이 빨개야 손님이 집중해서 너의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고 이만저만한 불만을 제기했다가는 미운털이 박혀 쫓겨나기 십상인 게 알바노동자의 삶이에요. 제가 당부하고 싶은 건 최소한의 증거라도 모아놨다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알바상담소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같은 곳에 도움을 청하라는 거예요.
증거는 어떻게 모으냐고요? 일단 일기를 쓰세요. 언제 출근해 몇시에 퇴근했는지 자세히 기록하면 증거로 효력을 갖게 돼요. 임금은 꼭 계좌로 받으세요. 사장과 주고받은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는 저장하시고, 가능하다면 통화나 대화도 녹음하세요.
갑작스러운 해고로부터 당신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도 있어요. 해고예고수당이에요. 사용자는 30일 전에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해고를 하면 노동자에게 30일 치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해요. 물론 사장이 이 제도를 알고 30일 전에 해고를 예고하면 별무소용이지만….
아무튼 저는 알바노동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알바노동자는 당연히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논리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알바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모욕이나 동정이 아니에요. 연대와 존중과 보호와 보장이에요. 저는 ‘꿀알바의 나라’를 꿈꿔요. 식대가 지급되고 휴일수당이 주어지고 일하다 다치면 당연히 산재처리가 되는 나라. 구체적인 얘기는 제가 낸 책에 담겨 있으니 시간이 나면 읽어주시길. 책을 쓰면서 어떻게 끝맺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었어요. “알바가 직업이 되는 나라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를 뜻하는 세상. 이것이 내가 새롭게 만들고 싶은 상식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