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얼굴) 일본 총리가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내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올해 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연설에서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거론했지만 한국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강제징용, 초계기 갈등으로 한껏 긴장된 양국 관계를 감안해 의도적으로 한국을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올해의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시정연설에 한국이 언급된 것은 이 부분뿐이다.
아베 총리는 2017년까지 시정연설에선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말했다가 지난해 처음 이 표현을 삭제했다. 그 대신 “양국 간 국제 약속, 상호 신뢰의 축적 위에 미래지향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협력 관계를 심화시키겠다”며 한국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었다.
올해는 “동북아를 안정된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새 시대의 근린 외교를 힘차게 펼치겠다”면서도 그 외교 대상으로 한국을 거론하지 않았다. 아베가 언급한 ‘근린 외교’는 주변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지만, 여기서 한국이 제외된 것이다. 아베가 외교정책에서 미국과의 동맹 강화, 중국과의 관계 개선,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 추진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 강화까지 거론하면서도 정작 이웃나라인 한국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초계기 위협비행과 레이더 갈등 등으로 양국 갈등이 심화되면서 의도적으로 ‘코리아 패싱’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사학 스캔들, 외국인 노동자 수용정책, 통계 부정 등으로 위기에 몰릴 때마다 ‘한국 때리기’로 재미를 봐왔다. 이날 아침 공개된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도쿄TV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53%로 지난달보다 6% 포인트나 올랐다.
고노 다로 외무상도 이날 국회 외교 부문 연설에서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망언을 거듭했다. 고노 외무상은 연설에서 한국을 향해 “국제적인 약속들을 지켜라”고 주장했다. 한일청구권 협정,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양국 간 합의를 지킬 것을 주장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베 총리는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고,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겠다”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대북 화해 분위기에서 ‘재팬 패싱’ 논란이 일자 정책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북·일 정상회담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개헌에 대해선 연설 마지막에 간략하게 언급했다. 그는 “헌법은 국민의 이상을 담는 것이자 다음 세대의 길잡이”라며 국회 차원에서 논의가 진전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위기를 강조하면서 강하게 개헌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개헌 관련 목소리를 낮춘 이유에 대해 “개헌에 반대하는 야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총리가 논의를 주도하는 게 다른 정당의 개헌 논의 참여를 오히려 힘들게 한다는 지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자민당은 지난달부터 인터넷방송과 강연을 통해 개헌 여론을 ‘조용히’ 끌어올리고 있다. 자민당은 올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을 이슈화할 방침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