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저씨, 4층 지정석 90만원 달래요” “가진 돈은 60만원인데 200만원 불러요”



“저 아저씨 4층 지정석을 90만원에 불러요. 원가는 11만원인데요.”

지난 27일 오후 3시쯤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밖에서 유혜지(18)양이 어이가 없다는 듯 기자에게 말했다. 인기 아이돌 워너원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 이날 공연장 주변은 ‘암표 장터’를 방불케 했다.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공연장 앞은 워너원의 마지막 무대를 보려고 국내외에서 온 팬들로 가득 찼다. 50, 60대로 보이는 암표상도 공연장 출입문과 매표소 인근에 삼삼오오 모였다.

암표상들은 팬이 다가오면 스마트폰으로 먼저 티켓을 보여주고 가격을 협상했다. 이틀 연속 공연장을 찾은 이모(27)씨는 “실물 티켓을 보여주고 돈을 받으면 스태프나 경찰한테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현행법상 오프라인에서 웃돈을 얹어 티켓을 재판매하면 처벌받는다. 이 때문에 실물 티켓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고 거래하는 꼼수를 쓰는 것이다.

가격 흥정의 승패에 따라 팬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홍콩에서 온 캐런(32)은 지난 24일과 25일 티켓을 온라인 사이트 ‘티켓베이’에서 각각 32만원과 41만원에 구매해 콘서트를 봤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며 “가지고 있는 돈이 60만원인데 암표상이 200만원을 불렀다. 입장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가격이 내려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워너원 콘서트 티켓은 예매가 끝난 직후부터 이슈화가 됐다. 온라인에서 티켓 한 장이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매물로 나왔다. 이에 공연장 앞에서 사복을 입은 경찰 5~6명이 단속에 나섰지만 효과는 적었다. 경찰은 “암표상이 실물 티켓을 꺼내 팬들과 돈을 교환하는 장면을 바로 포착해야 처벌이 가능한데 이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암표상이 안전요원에게 되레 ‘왜 나한테 이동하라 마라냐’고 소리치는 장면도 연출됐다. 워너원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 지난 4일간 경찰이 현장에서 적발한 암표 거래 건수는 9건에 그쳤다.

인기 아이돌그룹 콘서트 때마다 암표 문제가 지적되지만 정부 대책은 상반기가 넘어서야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온라인 시장의 티켓 재판매를 처벌하는 근거가 없다보니 오프라인과 온라인 전체적으로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 시간이 걸린다”며 “지난달 관련 연구 용역이 마무리됐다”고 했다. 이어 “국회에 계류 중인 공연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서둘러 통과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차라리 티켓 재판매를 합법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석주 스포츠산업경영학회 이사는 “수요와 공급이 맞아 이뤄지는 개인 간 거래를 막아선 안 된다”며 “미국의 경우 50개 주 가운데 38개 주에서 재판매를 허용한다”고 했다.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개인 사정으로 인한 취소 티켓이 생기고, 돈을 조금 더 줘서라도 좋은 공연 표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음성적 티켓 거래는 없앨 수 없다”며 “암표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부작용 최소를 위한 양성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매크로 등을 이용해 티켓을 대량 구매한 후 비싸게 팔아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가 문제”라고 했다.

안규영 김용현 박재현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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