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30)는 “저를 향했던 칼은 결국 엄마에게 향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그때 제가 먼저 찔렸으면 처벌받았을 텐데, 그러면 엄마는 안 죽었을 텐데…. 죄책감이 든다”며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2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A씨는 지난달 7일 어머니를 잃었다. 살해한 사람은 아버지 B씨(56)였다. 그는 사건 당일 오전 2시쯤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주방에 있던 흉기로 자신의 아내를 숨지게 했다. 지난해 10월 강서구 등촌동 전처 살해 사건이 일어난지 두달이 채 안돼 발생한 사건이다. B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부인을 죽이라’는 환청을 들었다”고 말했다.
A씨가 가슴 아픈 사건을 힘겹게 다시 꺼내든 건 B씨가 감형될까 우려해서다. 서울남부지검에 따르면 B씨는 공주치료감호소에서 감정유치를 받은 뒤 최근 심신미약 판정을 받았다. A씨는 “심신미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왜 이게 심신미약이지? 감형돼서 일찍 나오겠구나’라며 걱정했다”고 했다. 이어 “20년 넘도록 가정폭력에 희생당한 엄마를 저희에게서 빼앗아갔다”며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감형돼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A씨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술, 욕, 폭행만 떠오른다고 했다. 집은 매일같이 초록색 소주병이 나뒹굴었다. B씨가 마신 술이었다. 비정기적으로 화물차 운송업을 하던 B씨는 일이 없을 때면 매일 술을 마셨다고 했다. 음주 후엔 욕을 하고 물건을 부수고 어머니를 폭행했다. A씨는 “엄마가 소리 질러서 가보면 아빠한테 맞아 팔을 감싸고 있었다”며 “입에 흉터는 물론 이에 물린 자국도 많았다”고 말했다.
B씨는 2015년 6~7월쯤에도 집에서 칼을 휘둘렀다. 장녀인 A씨를 향해서였다. B씨는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고 욕을 했는데, A씨가 “욕 좀 그만하라”고 하자 칼을 들고 A씨의 방으로 달려들었다. A씨는 “처벌을 원했지만 엄마는 저와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용서해주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B씨는 가정폭력 관련 교육만 받았다. 이후 A씨가 들은 말은 “네가 신고해봤자 난 이렇게 지낼 수 있다”였다.
A씨와 동생들은 부모의 이혼을 바랐지만 어머니는 거절했다. 자식들이 걱정돼서였다. A씨는 “엄마는 저희가 이혼가정 아이들이 돼 손해볼까봐 걱정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강제로라도 이혼 시킬걸…”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A씨는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아직 갖고 있다. 여기에는 폭행으로 입술이 터진 어머니의 사진도 있다. 그 모습마저도 어머니의 흔적이라 지우지 못한다. A씨는 “보고 싶을 때 ‘보고싶다’고 카톡을 보낸다”고 했다. 하지만 답장은 없다.
A씨와 동생들은 트라우마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동생들은 아빠에게 살해당하는 꿈을 꾸고 있다”며 “특히 사건을 목격한 여동생은 50일 넘도록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안쓰럽다”고 말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강력한 처벌이다. A씨는 “아무래도 (아빠가) 나오면 보복당할 것 같다”며 “무기징역을 바라지만 그건 어차피 안 될 것 같다. 저희한테 보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