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일·EU 경제동반자협정(EPA)이 2월 1일 0시에 발효된다. 이로써 국제무역의 40%, 세계 국내총생산(GDP) 총액의 30%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권이 출범하게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은 대(對)EU 수출에서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EU EPA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보호무역 기조를 견제하는 성격도 있다.
일·EU EPA가 발효되면 EU는 일본산 수입 품목의 99%, 일본은 EU산 수입 품목의 94%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 양측은 서비스 시장도 높은 수준에서 개방하며, 특히 일본은 공공조달, 금융, 통신, 전자상거래, 운송 등 분야를 EU에 개방한다. 지속가능 개발과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고용, 안전, 환경, 소비자보호와 관련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수립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 업계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자동차다. 한국과 일본 모두 EU 수출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한국과 EU 간 자동차 관세는 한·EU FTA에 따라 현재 완전히 철폐된 상태다. 일·EU EPA 발효 이후 EU는 현행 10%인 일본산 자동차 관세를 단계적으로 낮춰 2026년 2월에 완전히 철폐한다. 일본산 자동차 부품의 경우 전체 품목의 92%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 EU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반면 일본 농축산업계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발효에 따라 일본 시장에는 이미 저렴한 호주산 농산물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일·EU EPA 발효 이후 일본은 EU산 와인과 연어 등에 대한 관세를 즉각 철폐한다. 돼지고기는 2027년 4월까지, 자연산 치즈는 2033년 4월까지 단계적으로 관세를 인하한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일·EU EPA에 따라 자국 농산물 생산액이 최대 686억엔(약 7009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30일 전했다. 특히 EU산 유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낙농업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다.
일본 간장과 녹차는 무관세 혜택을 얻는다. 와인 관세 역시 즉시 철폐됨에 따라 일본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산 와인의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EU EPA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견제 성격도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일본과 함께 TPP를 적극 추진했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뒤집고 탈퇴를 선언했다. 일본이 일·EU EPA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에 TPP 복귀를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