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포인트는 올리지 못했지만 존재감만큼은 컸다. ‘슛돌이’ 이강인(18·발렌시아)이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 레이) 8강에서 후반 추가시간 킬 패스 두 번으로 극적인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강인은 30일(한국시간) 스페인 발렌시아의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에서 열린 헤타페와의 국왕컵 8강 2차전에 교체출전해 팀의 3대 1 승리에 기여했다. 후반 26분 1-1 상황에서 조커로 투입된 이강인은 오른쪽 측면에서 공격 기회를 만들며 팀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강인의 진가는 후반 추가 시간에 나온 두 번의 패스로 확인됐다. 먼저 이강인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상대 수비를 달고 나오며 왼발로 패스를 올렸고, 이는 산티 미나의 헤딩 어시스트로 연결됐다. 로드리고 모레노가 미나의 패스를 받아 바로 골로 연결시켜 2-1로 앞서나갔다. 1분여 후 팀의 세 번째 골도 이강인의 발끝에서 나왔다. 이강인은 하프라인 부근에서부터 공을 몰고 가다 상대 수비를 허무는 스루패스를 해 케빈 가메이로에게 연결했다. 가메이로는 바로 땅볼 크로스를 때렸고, 이는 다시 모레노의 발을 맞고 골네트를 갈랐다.
이날 팀의 3골은 모두 모레노가 기록했으나 이강인의 패스가 없었다면 두 번째, 세 번째 골은 터지기 힘들었다. 그의 장기인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타이밍이 빛을 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 출전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팀 플레이에 녹아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강인은 지난 13일 프리메라리가 바야돌리드와의 홈경기에 출전해 리그 데뷔전을 치르긴 했으나 주로 국왕컵에 모습을 나타내며 스페인 무대에 적응하고 있다. 지난 9일 스포르팅 히혼과의 국왕컵 16강 1차전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고, 2차전에서도 풀타임 가까이 출전했다. 헤타페와의 1차전에서도 풀타임을 뛰었다.
이강인이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늘리면서 한국인 유럽 5대 리그 최연소 골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재 이 기록은 손흥민(27·토트넘 홋스퍼)이 갖고 있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에서 뛰던 2010년 10월 쾰른전에서 골을 터뜨려 18세 114일의 나이에 최연소 골 기록을 수립했다.
이강인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구단이 곧 새로운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발렌시아는 지난해 7월 이강인과 2022년 6월까지 바이아웃 8000만 유로를 포함한 계약을 체결했다. 바이아웃은 일정액 이상 이적료를 제시하는 구단은 소속 구단과 협의 없이도 선수와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