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시킨 결정타는 ‘드루킹’ 김동원씨와 주고받은 비밀 메신저 텔레그램이었다. 김 지사가 텔레그램과 다른 비밀 메신저 ‘시그널’을 통해 김씨에게 건넨 기사목록이 ‘댓글 조작 승인·독려’의 핵심 증거가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30일 김 지사가 2016년 11월 9일 문제의 댓글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을 봤다고 결론 내렸다. 김 지사는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 무렵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당선 등을 위해 킹크랩을 이용한 불법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로 허익범 특별검사팀에 의해 기소됐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동안 김 지사는 그 날짜에 드루킹 일당인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느릅나무출판사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킹크랩 시연은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날짜에 확인되는 킹크랩의 반복적인 접속 내역은 재판부가 김 지사 주장을 배척하는 주효한 증거가 됐다.
특검팀이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김 지사가 사무실에 방문한 저녁 무렵 킹크랩이 네이버에 접속해 특정 기사의 댓글에 공감을 클릭했고, 여러 아이디를 통해 이러한 행위가 반복됐다. 재판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드루킹 일당이 의도적으로 입을 맞췄다는 김 지사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로그램 개발자인 ‘둘리’ 우모씨가 접속 내역 등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기 전 이미 구체적인 날짜를 수사기관에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김 지사와 김씨가 주고받은 텔레그램·시그널에 기록된 내용은 김 지사가 김씨와 공범관계라는 것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였다. 비밀 메신저에는 김씨가 김 지사에게 장기간 정기적으로 ‘온라인 정보보고’ 파일을 보낸 정황이 드러난다. 온라인 정보보고에는 킹크랩의 댓글 작업 현황, 새누리당의 ‘댓글 기계’에 대한 내용 등이 담겼다. 이를 받은 김 지사가 ‘고맙습니다’라고 답장을 한 메신저 캡처도 공모관계를 입증하는 증거가 됐다.
재판부는 특히 김씨가 김 지사에게 댓글 작업이 이뤄진 기사목록을 보내고 이후 김 지사가 먼저 김씨에게 기사 링크를 보낸 일에 주목했다. 김씨 메신저에는 2016년 10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매일매일 1년6개월간 기사목록 8만건을 김 지사에게 보낸 기록이 확인된다. 김 지사는 모두 11차례 기사 링크를 김씨에게 보냈고, 김씨는 이를 ‘AAA’로 표시해 경공모 채팅방에 올려 조속한 작업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확인도 안하는데 1년6개월간 수백건의 기사목록을 전송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김 지사가 보낸 기사링크들과 그에 대한 답을 보면 김 지사가 지속적인 댓글조작을 승인하고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본 오사카 또는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것도 댓글 작업 활동에 대한 대가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고위 공무원직 제안은 김씨 등이 댓글 조작 범행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동기와 유인이 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지사는 ‘킹크랩’을 이용한 온라인 여론 조작을 승인하고 가담하면서 2017년 대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주도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여론 조작을 위한 어떤 시도도 배척해야 할 위치였는데 1년6개월이라는 장기간 관계를 지속하면서 8만건에 이르는 댓글 조작이 이뤄지도록 했다”면서 “죄질이 불량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고 밝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