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사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아이폰 고가 정책 실패를 사실상 인정했다. 애플은 일부 국가에서 아이폰 출고가를 인하할 뜻을 내비쳤다.
쿡은 29일(현지시간)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외 국가에서 아이폰 가격을 다시 책정하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아이폰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쿡은 터키 리라화 가치가 1년 사이에 33% 떨어졌고, 이로 인해 전년 대비 7억 달러 매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쿡은 “환율로 인해 가격이 훨씬 더 오른 곳이 있다”면서 “이런 지역은 가격을 1년 전으로 회귀시켜 판매를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쿡의 발언은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XS, XS 맥스 등의 출고가 설정이 잘못됐다는 걸 시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애플은 환율 변동성 등을 고려해 해외 가격을 미국보다 높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아이폰XS 맥스 256GB의 출고가는 1만2799위안이다. 이날 환율을 기준으로 하면 약 1900달러다. 반면 미국에서는 같은 제품이 14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400달러가량 차이난다.
애플 지난해 4분기 국가별 매출을 보면 쿡의 발언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미주 지역의 경우 전년보다 매출이 5% 증가했고, 선진국 시장인 유럽은 3.3% 매출이 줄었으나 감소 폭은 적은 편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무려 26.7%나 매출이 줄었고, 일본도 4.5% 감소했다. 판매에 영향이 적은 지역은 그대로 두되 가격 변동에 따라 매출이 감소한 곳은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애플은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의 가격을 조정할 것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가격 인하가 예상된다.
아이폰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줄어든 519억 달러였다.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등이 있는 연말 기간에 아이폰 매출이 감소한 것은 애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쿡은 “중국 경제 둔화가 아이폰 판매에 영향을 끼쳤다”고 토로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 내 반(反)애플 정서가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선 “양국 간 긴장감은 점차 완화하고 있다.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애플은 지난해 4분기 매출 843억 달러, 순이익 199억9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7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5%, 순이익은 0.5% 줄었다. 분기 매출과 순이익이 줄어든 건 10년 만에 처음이다. 맥, 애플워치, 서비스 부문 등이 모두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아이폰의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지난해 4분기 아이폰 출하량이 6590만대라고 밝혔다. 2017년 4분기 7730만대에 비해 15% 줄어든 수치다. 애플은 이번 분기부터 아이폰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현재 활성화돼 사용 중인 애플 기기가 총 14억대라고 밝혔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