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김동원) 일당’과 함께 2017년 대선 당시 불법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에 대해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한 광범위한 인터넷 여론조작이 있었고, 여기에 문 후보의 최측근인 김 지사가 적극 가담했다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곧바로 지난 대선 결과의 정당성을 문제 삼고 나섰다. 김 지사는 선고 직후 재판부와 최근 ‘사법농단’으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특수관계’라고 주장하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청와대는 “예상 못한 판결”이라고 당혹스러워했고 민주당은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성 판결”이라고 맹비난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 사법부에까지 메가톤급 후폭풍이 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조작을 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를 인정,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선출직 공무원인 현직 지사를 1심 재판 단계에서 구속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법원 관계자는 “증거가 명확해 항소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드루킹 일당이 주장한 ‘킹크랩(댓글조작 프로그램) 시연회 참석’ 등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정황증거의 신빙성을 대부분 인정했다. 나아가 김 지사와 드루킹이 주고받은 기사목록 등을 근거로 김 지사가 댓글조작을 지속적으로 승인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김 지사가 드루킹 측에 댓글조작 대가로 요구받은 일본 오사카총영사직 대신 센다이총영사직을 제공하려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도 유죄로 보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이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 무효가 된다.
야당은 김 지사에게 실형 선고가 내려지자 곧바로 문 대통령을 겨냥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도 “댓글로 대선 여론을 조작하고 그 대가로 인사를 약속한 것은 민주주의를 유린한 중대 범죄”라며 “대선 결과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거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대법원에 대선무효 확인 소송을 내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진짜 배후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댓글조작과 매크로조작은 민주주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박주민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대책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박 의원은 이번 판결을 내린 성창호 판사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 판사를 했던 상당한 측근”이라며 “사법농단에 연관된 판사들의 인적 청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법개혁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도 언급하며 공세에 나섰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는 불만도 나왔다.
청와대는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판결”이라며 “최종 판결까지 차분하게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내놨다. 판결이 나온 뒤 노영민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으나 대통령은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임성수 지호일 이가현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