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당분간 멈춰선다. 연준이 긴축 고삐를 풀면서 신흥국은 자본유출 부담을 한층 덜 수 있게 됐다. 한국 등 신흥국 증시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연준이 ‘비둘기’(통화완화 선호)로 돌아선다는 건 그만큼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옅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연준은 30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2.25~2.50%로 동결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준은 통화완화적인 입장으로 한 발짝 더 나갔다. FOMC 성명서에 ‘점진적인 추가 금리 인상’ 문구를 삭제했고, 향후 금리 인상과 관련해 ‘인내심을 갖겠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시장에서는 적어도 올해 상반기에 기준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며, 하반기 한 차례 인상으로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오는 6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은 11%에서 6%로 낮아졌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입장 변화의 이유로 ‘중국 유럽 등 글로벌 경기 둔화’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중단)’ 등을 꼽았다.
미국 경제매체들은 ‘완벽한 비둘기’(통화완화 선호)가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마켓워치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반대해 왔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완전히 항복했다’고 진단했다. CNBC는 연준이 금융시장의 바람을 모두 다 들어줬다고 전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글로벌 증시 등에 풀린 달러화를 빨아들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기준금리 인상이 당분간 중단된다는 것은 달러화 강세가 제한되고,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걸 뜻한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신흥국으로선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따라 올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기 둔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연준이 당분간 금리 인상을 늦추기로 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들도 통화정책에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연준의 메시지가 예상보다 완화적이라는 건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연준의 통화완화적 정책은 증시에도 ‘지원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스피지수는 연초 이후 꾸준히 우상향 흐름을 타 2200선을 회복했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증시의 가파른 상승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는 있겠으나 우상향의 흐름은 더 탄탄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연준의 통화완화적 정책이 외국인 자금 유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6년에도 재닛 옐런 당시 연준 의장이 통화완화적 발언을 한 후 외국인의 순매수 자금이 꾸준히 유입된 바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점은 부정적 요인이다. 연준은 이번 FOMC에서 미국 경기에 대한 평가를 지난해 12월의 ‘강한(strong)‘보다 약한 ‘탄탄한(solid)‘으로 바꿨다. 미국의 경기 부담이 커지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보다 경제가 더 취약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며 “연준의 긴축 중단을 고무적인 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