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베트남에서 이틀간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자 종전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추진했던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 대신 북·미 종전선언을 통해 협상 속도를 높이려는 취지다. 하지만 북·미 합의의 형식에 따라 한국 패싱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끄는 협상팀은 7일 평양에서 이틀째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했다. 최선의 결과는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종전선언 합의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종전선언은 6·25전쟁 당사국인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 합의였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자 체제가 아닌 북·미 양자의 종전선언이 도출될 것이란 관측이 정부 안팎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북·미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양자 종전선언이 나온다면 북한도 체제안전 보장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북한이 줄곧 요구해온 글로벌 대북 제재 완화의 명분도 확보하게 된다. 미국은 대신 영변 핵단지 등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를 위한 포괄적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양자 종전선언은 양측이 속도전을 벌이기 위한 카드인 셈이다.
양자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정부 입장이 난처해지는 면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연내 종전선언’을 총력 추진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 프로세스는 살아 있다”며 지속 추진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북·미 양자 간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정작 핵심 전쟁 당사국인 한국이 소외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정부는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 부속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에서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이 이뤄진 만큼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제 유일한 적대관계인 북·미 양측만 종전을 선언하면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과거에도 남북 합의는 손바닥 뒤집듯 번복되는 경우가 잦았다. 정부가 다자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것도 합의의 영속성을 위한 조치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양측이 종전선언에 합의할 경우 다자 합의를 타진할 계기는 평화협정밖에 남지 않게 된다. 외교 소식통은 “정전체제가 올해로 66년 동안 이어져 왔는데 평화협정은 언제쯤 추진될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북·미 정상 간 합의 여부에만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데 합의를 지속 유지하기 위한 조건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북·미 양자 종전선언 여부를 언급하기에는 이른 면이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두고 북·미 협상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2차 북·미 정상회담 계기 다자 종전선언은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자 종전선언을 위한 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