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담당 기자 앞으로 배달되는 여러 소설과 시집을 뒤적이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종이책에만 있는 건 아닌데….’ 문학 콘텐츠는 미디어 발달과 함께 영화, TV 드라마, 게임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는 게임 라이터(game writer)가 게임의 스토리를 담당한다. 인터넷 기술과 미디어 발달의 최전선에 있는 게임에서 작가는 어떤 일을 할까.
이차선 엔씨소프트 콘텐츠·스토리 디렉터는 최근 경기도 성남 엔씨소프트 사옥에서 가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게임의 본질은 플레이(play)이기 때문에 게임 라이터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디렉터는 엔씨소프트의 대표 게임인 ‘블레이드&소울’(블소·사진) 개발에 게임 라이터로 참여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그는 2009년 자신의 글이 게임으로 구현된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 디렉터는 “게임 라이터는 기획자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게임 단계와 상황에 맞춰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벽을 격파해야 게임이 진행된다면 라이터가 그 벽을 깰 상황을 만들어 플레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토리는 게임의 중심이 아니라 플레이 진행을 돕는 설정이란 얘기다. 2012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블소는 현재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베트남 등 9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블소는 동양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선한 세력이 악한 세력과 대결하는 내용이다.
이 디렉터는 “게임 라이터가 순수한 창작 면에서 게임에 접근하면 일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왜 그럴까. 게임은 작가가 작업실에 앉아 혼자 쓰는 작업이 아니라 대규모 협업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블소만 해도 수십 명이 5년 넘게 머리를 맞대고 500억원의 개발비를 투자해 만든 게임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는 라이팅팀, 대결 상황을 만드는 전투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구현해내는 아트 비주얼팀 등 다양한 팀이 협조를 한다. 게임의 각 단계에서 그 상황을 가장 재미있게 만들어줄 스토리, 싸움, 기술을 단계마다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스토리 측면에서 보자면 소설과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자기 참여’ 부분이다. 이 디렉터는 “소설 독자는 작가가 완성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재미를 느낀다면 게이머는 게임의 주인공이 돼 스스로 게임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면서 쾌감을 얻는다. 게임에도 나름대로 정해진 스토리가 있지만 게이머가 상황을 선택하고 돌파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했다.
소설 장르처럼 게임에도 플레이 방식에 따라 장르가 있다. 역할수행게임(RPG)은 게이머가 게임 속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역할을 수행하는 게임이다. 요즘엔 블소나 리니지처럼 많은 사용자가 동시에 역할을 맡아 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이 인기다. 실시간전략게임(RTS)은 게이머가 여러 자원을 활용해 전략 대결을 하는 게임이다. 스타크래프트가 대표적이다. 이외 배틀그라운드처럼 무기를 이용해 전투를 벌이는 슈팅 게임(FPS), 애니팡처럼 퍼즐을 맞추는 퍼즐게임 등이 있다.
이 디렉터에게 청소년의 게임 중독에 대해 물었다. 그는 “중독이 아닌 과몰입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성분 자체에 중독성 물질이 있는 알코올이나 마약과 달리 게임에 중독의 요소가 있다는 것은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해 게임 시간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는 일이나 공부 외에 순수한 재미를 위해 뭔가 하는 걸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행복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탈출구로 찾은 게 게임은 아닐까.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 해소와 작은 즐거움을 주는 차원에서 부모가 게임을 ‘보상’으로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과몰입을 해소할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게임은 정보기술과 음악, 영상 등이 집약돼 있는 종합예술이다. 또 영화, 뮤지컬처럼 즐거움을 주기 위해 고안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콘텐츠 수출액(34억 4918만달러) 중 게임 수출액은 62.1%를 차지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