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졌던 지난달 2일 노숙인 이모(52)씨는 서울역파출소를 찾았다. 무전취식과 쌍방폭행으로 부과받은 벌금 200만원이 있다는 사실을 자수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하루에 10만원씩 탕감받는 조건으로 20일을 노역장에서 보냈다. 이씨는 10일 “한겨울 길바닥에 박스를 깔고 추위에 떨며 자느니 구치소의 따뜻한 온돌에 눕고 싶었다”며 “하루 세 끼 밥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하다 나왔다”고 말했다.
주취폭행으로 벌금 500만원을 부과받았던 노숙인 김모(51)씨도 최근 스스로 노역장 행을 택했다. 서울역희망지원센터 근무자 하모씨는 “김씨가 한동안 안 보이다가 지난달 살이 통통해진 채 돌아왔다”며 “학교(노역장)에 갔다 왔다고 들었는데 겨울에 자주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해 스스로 노역을 택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서울역파출소의 경우 요즘 하루에 한두 명꼴로 노숙인들이 찾아와 벌금 조회를 부탁한다. 경찰 관계자는 “거리에 침을 뱉거나 대소변을 보고, 담배꽁초를 버려 단속돼도 벌금이 5만원씩 부과되기 때문에 다수의 노숙인들이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벌금 미납자는 자수할 경우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돼 노역을 하게 된다.
노숙인들이 노역을 택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출소 후 수십만원의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긴급복지지원법은 갑작스러운 위기사항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저소득층에게 생계·의료 등 복지 서비스를 긴급지원해 주는 제도다. 중한 질병이나 부상, 수용 등 사유로 소득을 상실한 경우 ‘위기 상황’임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로부터 긴급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다.
출소자는 현장 확인서와 소득신고서 출소증명서 등을 제출하면 44만1900원(1인가구 기준)을 받는다. 서울 후암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출소한 노숙인들이 주로 연초에 지원금을 받기 위해 찾아온다”고 말했다. 서울 남영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노숙인들이 수용시설 안에서 지원제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다수 노숙인들이 구치소 안에서 ‘따뜻한’ 한때를 보내고, 출소 후 지원금을 받은 뒤에도 다시거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각종 질환과 범죄에 매몰된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노숙인 최모(60)씨는 “출소 후 받은 지원금은 대부분 술값으로 탕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노숙인의 자활·자립을 위한 주거 지원, 탈노숙 이후 사후 관리 등의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구원의 ‘노숙 진입에서 탈출까지 경로와 정책과제’ 연구에 따르면 노숙생활 탈출을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중독·질환 치료, 자활 의지·욕구, 가족·친지 관계 회복, 생활기술 획득, 사회생활 적응, 부채 문제 해결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공공부조 및 지원에 관한 정보 획득, 안정적인 일자리 지원, 주거지원 및 유지, 지역사회 재진입, 취업 경제활동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노숙인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물질적 지원에 치중된 반면 자활의지를 갖게 하는 지원은 미흡한 편”이라며 “노숙인들이 책임감을 갖고 심리·정서적 안정을 갖도록 돕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이사야 이동환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