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도자로서는 55년 만에 김정은(사진)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핵 담판을 갖는다. 미국과 베트남의 전장(戰場) 하노이에서 북·미가 ‘북한판 도이머이’(베트남 개혁개방 정책) 성사를 타진할 전망이다.
일단 조짐은 나쁘지 않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지난 6~8일 평양 방문에 대해 청와대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오는 27일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하노이 방문은 1964년 할아버지 김일성 국가주석에 이어 55년 만이다. 당초 예견됐던 다낭이 아닌 하노이가 회담 장소로 결정된 것은 김 위원장의 베트남 국빈방문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노이와 다낭이 비행기로 1시간20분 거리여서 김 위원장이 전용기 참매를 타고 이동하기도, 육로로 이동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국빈방문이 성사된다면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전날인 26일 입국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중국만 오갔던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싱가포르, 베트남 ‘롤모델’ 투어에 나서게 됐다. 권위주의형 일당체제(싱가포르)와 공산주의체제(베트남) 아래 개혁개방에 성공한 두 나라는 북한의 미래를 가늠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베트남은 과거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의 투자 등으로 고속 성장에 성공했다. 여권 관계자는 10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베트남 정상회담 개최에 긍정적인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적대관계를 해소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베트남이 북한에 설명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국한됐던 북한의 외교지평을 미국과 수교한 유사체제 국가로 확대하는 길잡이 역할을 트럼프 대통령이 자임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기대감이 새어나오고 있다. 북·미 협상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2차 정상회담에서는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에 관한 진전된 트랙이 나올 것”이라며 “평화협정 로드맵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1차 임기가 끝나는 2020년쯤 6·25전쟁 당사국인 남·북·미·중 정상 또는 실무진이 모여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양국이 합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노이에서 그런 합의를 이끌어내면 사실상 북·미 간 양자 종전선언을 하게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와 함께 초기 신뢰확보 조치로서 북핵 동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동결 등 일종의 ‘스몰딜’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는 이 같은 조치들이 ‘스몰딜’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현실적인 신뢰확보 조치들이 선행돼야만 핵 폐기·반출 같은 ‘빅딜’이 이뤄질 수 있는 만큼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앞선 9일 비건 대표와 50분간 면담하고 평양 북·미 실무협상 결과를 청취했다. 정 실장은 회담 후 “큰 방향에서 북·미 회담이 잘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비건 대표는 평양에서 환대를 받았다”며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익한 기회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