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확정된 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1000년 이상 베트남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북한에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국의 심장’이며, 미국에는 적국에서 우방국으로 관계를 전환하는 데 상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하노이는 남부 최대 도시 호찌민과는 1700여㎞ 떨어져 있다. 인구는 100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도시로 우리 교민도 6만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 6세기 무렵부터 베트남의 중심도시가 됐고, 1831년 하노이로 명명됐다. 하노이는 강(江)을 뜻하는 베트남어 ‘하’와 안쪽이라는 의미의 베트남어 ‘노이’가 결합된 단어로 강의 안쪽에 위치한 도시라는 뜻이다. 19세기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중심지였고, 1940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 점령지이기도 했다. 1954년에는 북베트남의 수도가 됐고, 베트남전이 끝난 후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됐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1950년 1월 북한과 수교를 맺었고, 베트남전 당시 북한이 공군 병력과 군수물자를 지원하면서 혈맹 관계로 발전했다. 1978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당시 북한이 이를 비난한 것과 1992년 베트남이 한국과 수교하면서 양국 관계는 냉각기를 겪기도 했지만, 북한과 베트남은 현재까지도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베트남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공산당 1당의 단일지도체제를 갖추고 있다. 행정과 군사, 관료기구를 포함한 국가체제 전반을 공산당이 통수하며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권력서열 1위인 당 서기장은 5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구성된 정치국 위원 중에서 선출된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1980년대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하면서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베트남어로 ‘쇄신’을 의미)를 채택했다. 1995년 적국이었던 미국과의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본격적인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도이머이 정책 도입 이후 베트남은 연평균 6%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2018년 추산에 따르면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은 명목금액 기준 2474억 달러로 세계 47위이며, 1인당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2603달러다. 실업률은 지난해 4분기 2.2%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도이머이 정책 도입 이후에도 공산당의 입지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베트남이 2006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개최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장했음에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공히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베트남의 국토 면적은 33만967㎢로 한반도의 약 1.5배 크기이며 인구는 9700만여명이다. 하노이의 2월 기온은 최저 19~20도, 최고 27~28도로 생활하기 좋은 시즌으로 알려져 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