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가 놀랐다. ‘극한직업’의 폭발적 흥행은 ‘이변’으로 통하고 있다. 거대한 사회담론을 다루지도, ‘A급’ 흥행배우가 출연하지도, 검증된 거장 감독이 연출하지도 않은 이 코미디 영화의 성공은 충무로의 흥행 공식을 완벽히 깨버렸다.
‘극한직업’은 개봉 18일 만인 10일 누적 관객 수 1281만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넘어섰다. ‘7번방의 선물’(2013)을 제치고 역대 코미디 영화 사상 최고 흥행을 달성한 것이다. 순제작비 65억원이 투입된 중형 영화인데 누적 매출액은 이미 1055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극한직업’의 흥행세는 괄목할 만하다.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오프닝, 역대 1월 개봉영화 최고 오프닝(이상 36만8442명), 역대 1월 영화 최다 일일 관객 수(99만4577명), 역대 설 연휴 최다 관객 수(525만7243명) 등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1200만 돌파 속도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2014·15일)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이 같은 추세라면 1400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400만 고지를 밟은 영화는 역대 박스오피스 1~3위인 ‘명량’(1761만명)과 ‘신과함께-죄와 벌’(2017·1441만명) ‘국제시장’(2014·1426만명) 세 편뿐이다.
‘극한직업’은 여타 ‘1000만 영화’들과 달리 장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호흡과 재치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지며 시종 뚝심 있게 ‘웃음’만을 던진다.
앞서 ‘스물’(2014) ‘바람 바람 바람’(2017)을 선보였던 이병헌 감독은 연출 경력으로 치면 신인에 가깝다. 코미디에 특화된 그의 재능은 일찍이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는데, 이번 작품에서 여실히 빛을 발했다.
작품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무게감 있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에 이 영화가 지닌 경쾌 발랄함이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곽영진 영화평론가는 “우리나라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웃음과 해학을 좋아하는데 특히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코미디가 더욱 각광받는 경향이 있다”면서 “팍팍하고 힘든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도피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촛불정국 이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남북 평화 무드가 급물살을 타면서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최근에는 심각한 사회고발성 영화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찾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분석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형사들이 건수를 올리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한다는 기발한 설정은 웃음과 동시에 공감을 자아낸다.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하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가 그렇듯, 각자의 극한직업을 견뎌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건드린다. 윤 평론가는 “그렇다고 진중한 메시지나 교훈을 전하기보다 끝까지 ‘신나게 웃겨주겠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게 이 영화의 진짜 강점”이라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