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영하의 날씨에 추모 행렬이 이어진 2건의 장례가 있었다. 사무실 의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 응급의료센터장, 태안화력발전소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영정 앞에서 시민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열악한 응급의료 환경과 위험의 외주화 실상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 이면에는 죽음의 희생을 치르고서야 변화를 모색하는 한국사회의 슬픈 현실이 묻어난다.
정기현 중앙의료원장은 10일 윤 센터장 발인에서 “당신의 가늠할 수 없는 고민의 크기와 깊이를 세상은 미처 좇아가지 못했다”며 “60년 된 낡은 건물 4평 남짓 집무실. 숱한 밤 그 안에서 싸운 당신의 시간을 우리는 미처 잡아주지 못했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선생을 잃은 지금 이 순간이 한스럽다”고 했다.
윤 센터장은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나라를 바꿔보고자 고군분투했다. 일주일에 6일을 집무실 내 낡은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현장을 지켰다. 의료계 내부의 반발, 국내외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좀처럼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해 윤 센터장은 참담한 심정을 여러 번 토로했다고 한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그를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아틀라스’에 비유했다. 이 교수는 “본인에게 형벌과 같은 상황이지만, 아틀라스가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며 견뎌내는 덕분에 우리는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다”며 “선생님은 바로 아틀라스”라고 추도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전날 열린 영결식에서 김용균씨 동료들은 그를 “빛”이라 불렀다. 그의 죽음으로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이뤄졌음을 뜻한다.
장례위원장 93명이 쓴 조서에는 “동지의 희생과 부모님의 헌신에 힘입어 우리 사회는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라는 악순환의 사슬을 끊는 중대한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됐다”는 대목도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누군가의 목숨이 담보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꾸고 모든 이가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지 62일 만에 장례를 치른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사랑하는 내 아들아,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엄마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엉엉 울었다.
한국 사회에서 응급의료 시스템에 몸담고 있는 종사자들의 열악한 상황이나 하청 계약을 통해 비정규직에 위험을 떠맡기는 외주화 구조의 문제점은 훨씬 전부터 지적돼 왔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극단적 희생의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진 적극적 대처는 미흡했다. 무거운 짐을 진 누군가의 희생으로 변화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희생을 막기 위해 변화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