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수 최초로 시상을 하기 위해 미국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 무대에 올랐다. 수상의 영예를 안거나 화려한 공연을 선보인 건 아니었지만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에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BTS의 위상을 증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한국 차량을 이용해 시상식장에 도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BTS는 10일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R&B 부문’ 시상자로 나섰다. 히트곡 ‘페이크 러브’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등장한 이들은 “한국에서 자라면서 이 무대에 서는 날을 꿈꿨다”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다시 돌아오겠다”며 언젠가 이 시상식에서 상을 거머쥐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BTS는 수상자로 미국 싱어송라이터 허(H.E.R)를 호명하고 트로피를 건넨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BTS는 시상식이 끝난 뒤 소속사를 통해 그래미 입성을 자축하는 소감을 전했다. 이들은 “여러 차례 그래미 어워즈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오늘 그 꿈을 이뤘다”고 했다.
시상식은 음악 전문 채널 엠넷을 통해 국내에도 생중계됐다. 진행을 맡은 방송인 배철수는 “그래미 어워즈를 볼 때마다 ‘언젠가 한국 아티스트가 저 무대에 서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면서 감격스러워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BTS의 위상과 영향력이 인정받은 날”이라며 “우리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BTS는 시상식이 열리기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도 참석해 현지 매체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멤버들은 차기작 발표 시기를 묻는 질문엔 “곧 나온다”고 답했다. 레드카펫이 생중계된 현지 매체의 온라인 채팅창은 BTS에 열광하는 팬들의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BTS는 고급 리무진이 아닌 현대자동차의 신차인 펠리세이드를 타고 시상식장을 찾았다. 의상 역시 해외 명품 브랜드가 아닌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을 착용했다. 패션지 보그에 따르면 BTS 멤버들은 이날 디자이너 백지훈이나 김서룡이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
그동안 그래미 어워즈는 백인 남성 뮤지션을 우선시하는 보수적 성향을 자주 드러내 논란이 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흑인 여성 뮤지션인 얼리샤 키스가 진행을 맡았고, 흑인 음악의 요람 역할을 했던 ‘모타운 레코드’의 60주년을 기리는 특별 무대도 펼쳐졌다. 미국 래퍼 차일디시 감비노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를 비롯해 4관왕에 올랐으며 ‘올해의 앨범’은 미국 뮤지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에게 돌아갔다. 신인상은 코소보 출신 영국 가수 두아 리파가 수상했다. BTS의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의 앨범 디자인을 맡은 회사 허스키폭스는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엔 실패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