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액수를 두고 갑자기 딴소리를 내놨다. 한·미 양국은 올해 한국 측 부담 액수를 지난해보다 787억원 인상한 1조389억원으로 합의하고 가서명까지 마쳤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이틀 만인 12일(현지시간) 당초 합의한 인상 폭보다 무려 7배나 많은 5억 달러(5607억원)를 한국이 더 지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 열릴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우리 정부를 압박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알다시피 우리는 한국을 지켜주면서 많은 돈을 잃고 있다. 일년에 수십억 달러씩 든다”면서 “어제 한국은 내 요구를 받아들여 5억 달러를 내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나는 전화 몇 통을 걸어 5억 달러를 받아냈다”며 “내가 그들에게 ‘왜 진작 돈을 올려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 그것(방위비 분담금)을 더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전화 몇 통’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화통화를 하기로 약속한 적은 있다. 하지만 한·미 정상 간 통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다음 주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분담금 인상을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함께 일했다”고 말했지만 이들의 ‘카운터파트’인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5억 달러라는 액수 자체가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3일 “합의한 액수는 분명히 1조389억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수치의 배경을 알아봐야겠지만 양국 간 합의 내용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잘못된 수치와 거짓 주장을 사실인 양 말하는 연설 태도로 악명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고용 증가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체결 등 경제 분야 성과를 홍보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다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수치를 뻥튀기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면계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왔지만 우리 정부는 부인했다.
5억 달러 인상액의 진위와 무관하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5억 달러를 내면서 50억 달러의 값어치가 있는 보호를 받고 있다. 미국은 그것보다 더 받아내야 한다”면서 “앞으로 몇 년 동안 분담금이 계속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번 분담금 협정 기한은 1년이지만 한·미가 서면 합의를 통해 1년 연장하도록 돼 있다. 1+1인 것”이라며 “인상의 필요성 여부를 양쪽이 검토하고 합의해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인상을 너무 기정사실화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조성은 박세환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