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SKY캐슬’(JTBC)이 장안의 화제였다. 세속적인 욕망을 자녀를 통해 대리 충족하려는 어른들의 막장 전투보다는 그 안에서 불행하고 고단한 10대의 모습이 더 안쓰러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기는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해외 명문 음악학교에 유학하고 돌아오면 교수가 될 수 있던 기성세대에 비해 지금 젊은 음악인은 각종 콩쿠르에서 더욱 월등한 성취를 하고도 훨씬 더 불리한 인생을 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성공은 우연성이 크기에 프로세스를 가늠할 수 없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이 누리는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인이 되었다”는 바이런식 유명세는 그야말로 드문 일이다. 같은 대회 바로 직전 우승자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생각보다 부진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요즘 젊은 음악가들은 조성진 신드롬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자신의 실패와 성공을 너무 이르게 속단하는 듯하다.
스포츠 경기나 시험처럼 객관적인 성적을 가늠할 수 없는 주관적인 예술 영역에서 경쟁은 더욱 복잡 미묘하다.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파이널리스트’는 콩쿠르에 임하는 어린 음악가들의 모습을 그렸다.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2명의 결승 진출자들이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합숙하며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취재해 제작한 이 영화에는 한국인 음악가 임지영 이지윤 김봄소리 3명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우승자인 임지영보다 이지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을 더 빈번하게 조명한다. 카메라 앞에서 음악가들은 저마다 대회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은 남과의 비교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한다. “결승 진출만으로도 만족한다”며 마음을 내려놓은 이도 있고 난해한 현대음악을 익히며 자신의 한계를 한탄하는 이도 있다.
단짝으로 유명한 임지영과 이지윤이 산책 중에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의 백미다. “콩쿠르에서 우승해봤자 한국에서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도 이제 조금 있음 20대 후반이야. 언제까지 부모한테 의지할래”와 같은 말들이 풋풋한 젊은이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며 대견함보다 미안함이 느껴졌다. 필자도 젊은이들이 비관하는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 기성세대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우승자로 호명된 이름을 잘못 알아듣고 임지영 대신 이지윤이 무대에 등장하며 절정에 달한다. 모두가 당황했던 이 해프닝에 정작 이지윤은 의연하다. 그 의연함의 결과로 그녀는 현재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최연소 및 최초 여성 종신악장으로서 자신의 화려한 커리어를 누리고 있다. 이 대회의 또 다른 파이널리스트 김봄소리 또한 최근 쇼팽 콩쿠르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와 듀오 음반을 내면서 명실상부한 국제 커리어를 시작하고 있다.
‘SKY캐슬’에서 시작해 ‘파이널리스트’로 끝나는 이 칼럼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당신들이 이미 늦었다 생각하는 그 ‘20대’는 아직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나이라고. 인생은 길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