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 목표를 낮추는 듯한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극적인 무대에서 깜짝 발표를 하기 위한 고도의 흥행전략이라는 분석과 아무 성과 없는 ‘빈손’ 회담이라는 비난을 벌써부터 우려해 기대치 하향 조정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엇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리는 단지 실험을 원치 않는다(We just don’t want testing)”고 말했다. 북한이 계속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초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가 최종 목표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북·미 실무협상을 진행하면서 ‘단계적 비핵화’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선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맞교환하는 동시·병행적 조치 정도가 최대 성과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확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단지 실험을 원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미국의 목표가 ‘완전한 비핵화’에서 ‘단계적 비핵화’로, 다시 ‘핵·미사일 실험 중단’으로 점점 후진하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되는 이유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지난달 “미국민의 안전이 최우선 목표”라고 밝힌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4일 CBS방송 인터뷰에선 “(대북)제재 완화와 교환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우리의 의도”라고 해 사실상 처음으로 제재 완화 카드를 공식 거론하기도 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다가올수록 미국이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에서 한 발짝씩 물러나는 듯한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선(先) 미국 본토 위협 제거, 후(後) 완전한 비핵화’ 전략을 취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은 여전히 나온다.
반면 일련의 트럼프 행정부의 후진과 관련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세기의 이벤트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발표하기 위해 의도된 엄살 연기를 펼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관계자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북핵 회의론을 의식해 수비 모드로 전환했다”면서 “하노이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날 경우에 대비해 스스로 김빼기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확산 전문가인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정치학 교수는 트위터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 낙관론과 신중론을 넘나들면서 정리되지 않은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1차 (싱가포르) 회담에서 많은 것이 이뤄졌다”면서 “이번에도 똑같이 성공하기를 희망한다”고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속도에 대해 서두를 게 없다”고 북한 비핵화 장기전도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그들(북한)은 진짜로 미국을 이용해 왔다. 수십억 달러가 그들에게 지급됐다”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과 러시아, 중국 사이에 있는 북한의 입지는 경이적”이라며 “나는 북한이 경제 강국으로서의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비핵화=경제발전’ 공식을 거듭 확인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