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는 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25일 베트남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일정보다 이틀 앞서 베트남에 온다면 담판에 앞서 기선잡기용 ‘쇼케이스’(신인 등을 널리 알리는 특별공연)가 될 수 있다.
베트남은 북한의 발전 모델로 미국이 직접 제안했던 곳이다. 김 위원장은 여기에서 경제 시찰 등으로 개혁·개방 의지를 과시하거나 비핵화 메시지를 내놓으며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베트남을 국빈방문하는 것 자체가 북한 외교전선을 중국 중심에서 전 세계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25일 베트남에 도착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보도가 맞다면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베트남을 국빈방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25~27일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방문할 계획인 쫑 주석은 출국에 앞서 김 위원장과 회담할 예정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김 위원장의 구체적인 일정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국내 외교가에서도 김 위원장이 베트남을 미리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의 일정을 진행할 것이라는 정황은 여럿 발견되고 있다.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장관은 지난 13일 북한에서 리용호 외무상을 만났다. 정상회담 의전 조율을 맡은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은 17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 박닌성의 삼성전자 스마트폰 공장 주변을 차로 둘러봤다. 로이터는 김 위원장이 베트남 관료들을 만나면서 박닌성의 산업기지와 하노이 동쪽 항구도시 하이퐁, 관광지 하롱베이 등을 방문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위원장이 이 같은 행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한다면 북한 최고지도자가 사상 처음 한국 기업을 방문하는 순간이 된다. 남북 경협 재개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남측과 같은 수출주도형 경제를 꾀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베트남의 관광지나 산업시설을 방문할 경우에는 미국과 수교 후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급성장한 베트남식 경제 모델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게 된다.
김 위원장의 경제 행보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와 맞물려 제재 해제 요구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베트남 경제 일정은 미국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카드”라며 “북한이 경제 발전을 위해 비핵화에 적극적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미국 내 비핵화 협상 반대 여론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먼저 베트남을 찾아 독자 일정을 갖는다면 더욱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협상 주도권을 쥐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