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콘크리트 건물에 겸재 그림 속 초옥과 기와… ‘묘한 동거’ 화폭에

민정기 작가는 동양화와 고지도의 전통을 차용해 21세기 한국의 풍경을 유화로 그린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한양 서촌을 그린 ‘청풍계도’. 작가 제공
 
‘청풍계도’ 속 이미지 일부를 현재의 그곳 모습 안에 병치시킨 ‘백세청풍’. 작가 제공
 
고지도 형식을 빌려 그린 ‘묵안리 장수대’. 작가 제공


지난 설 연휴도 그랬다. 명절은 집마다 전통과 현대가 한바탕 씨름하는 현장이었다. 지글지글 전 부치는 기름 냄새 뒤엔 갈등이 배어 있다. 음식 분량을 둘러싼 고부 간 신경전은 사소한 축에 든다. 명절 아침을 각자 부모님과 보내기로 한 어느 며느리는 설날 전날 시아버지로부터 ‘전통이나 관습을 따르는 게 무난한 삶 아니냐’는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고.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 창의적 공존의 길은 없는가.

우리에게 전통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원로 화가 민정기(70·사진) 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민정기 개인전(3월 3일까지)에 나온 작품들은 캔버스에 그렸는데도 조선 시대 산수화 맛이 진하게 난다.

민정기라는 이름,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 서명식을 할 때 배경으로 카메라에 잡혔던 ‘북한산’을 그린 그 작가다. 기법을 묻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북한산을 그린 서양화이지만, 우리 한국화 기법이 사용됐습니다.”

이보다 간명한 설명은 없을 것 같다. 수묵 산수화는 케케묵은 것이라며 외면하는 21세기에 작가는 유화 물감을 사용하면서도 전통 산수화의 기법을 끌어안았다. 동양화의 이미지나 고지도에 21세기 모습을 병치시켜 풍경의 비빔밥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 새로 차용한 것은 정선(1676~1759)의 ‘청풍계도(淸風溪圖)’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우리 산과 강을 그려도 중국 산수를 모사하는 관념 산수가 지배적이었다. 정선은 특유의 기법으로 우리 국토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의 시대를 개척했다. 금강산 그림으로도 유명하지만 자신이 사는 한양 풍경도 즐겨 그렸다. 그중 하나가 자신이 나고 자란 인왕산 기슭의 장동(지금의 청운동) 풍경이다. 청풍계도는 정선의 후원자였던 안동 김씨를 유력 문벌로 키운 김상헌의 별장이 있던 계곡을 그린 그림이다. 암벽을 도끼로 대패질하는 기세로 그린 붓질 때문에 말 그대로 계곡 아래로 푸른 바람이 시원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활엽수는 쌀알을 흩뿌린 듯, 소나무는 특유의 T자형으로 분방하게 표현했다.

청풍계도를 아는 사람이라면 민정기 선생의 신작 ‘백세청풍’을 봤을 때 와락 반가움이 밀려왔을 것이다. 개막식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바위 보세요. 겸재의 그림에 나오는 겁니다. 바위 옆 비탈길로 올라가면 나오는 계곡에서 겸재는 죽마고우 이병연과 물장구치며 놀았지요.”

강산은 변해 김상헌의 별장이 있던 자리엔 유진인재개발원이 들어섰다. 콘크리트 건물과 태양열 지붕이 있는 지금의 풍경 속에 정선의 그림 속 초옥과 기와가 들어차 있는 이 묘한 어울림을 보라. 민정기 선생이 걸었을 그 길을 과거 겸재 정선이 걸었다. 그래서인가. 그림 속에서 정선과 어울려 지냈던 친구 이병연, 이들의 스승 김창흡 형제가 한여름 정자에 앉아 나누던 담소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의 민정기 화백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진원지인 ‘현실과 발언’ 창립 멤버다. 일명 ‘이발소 그림’으로 엘리트 미술에 저항했다. 1987년 서울을 떠나 경기도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긴 이후부터 그가 그린 풍경화 속에 고지도가 들어앉았다. 옛 지도식으로 ‘공주노래방’ 같은 간판을 표시하니 풍경이 더욱 정겹다. 기실 고지도야말로 우리 국토를 기록하듯이 그렸기에 진경산수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몇 년 전 서울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겸재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지금 서울은 메트로폴리탄이지만 정선이 살았던 18세기에도 가장 번화한 도시였다. 그래서 도시를 담는 방법론으로써 옛 그림을 차용했다. 정선의 그림 속 인왕산 홍지문 창의문 등을 수없이 답사하며 작품에 끌어왔다.

사진 자료도 활용이 된다. 서촌에는 고종 때 친일관료 윤덕영의 프랑스식 별장이 있었다. 600평 으리으리한 규모의 이 별장은 1970년대 화재로 전소됐다. 그 자리엔 다세대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런데도 별장에 사용됐던 장식용 돌들이 지금의 주택가 곳곳에 흩어져 있어 과거의 기억을 환기한다. 작가는 사진 자료에 의존해 소실된 그 자리에 별장을 그려 넣었다. 유령이 된 윤덕영의 별장이 21세기의 연립주택에 둘러싸여 있는 불가능한 동거가 그의 화폭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

작가는 서양화의 일점투시도법을 배제하고 동양화 특유의 다시점을 쓴다. 일부러 황색 계열과 녹색 계열의 통일된 색감을 써서 입체감을 거세하고 평면성을 부각한다.

민정기의 작품은 명화에 기대는 패러디처럼 옛 그림을 아는 사람에게 지적인 즐거움을 준다. 옛 그림을 많이 알아야 그의 작품을 보는 재미가 배가된다. 마치 옛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을 준다. 이는 우리에게 과거와 마주하는 법에 대한 지혜를 준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과거가 이해되는 부분, 버릴 부분, 과거를 변용해야 할 부분들이 더 명료해지지 않을까?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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