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기 전엔 전교 3등도 했는데…” 초졸서 멈춘 학력, 은둔형 외톨이로

중국동포 김지아(가명)양이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하나다문화센터 다린을 찾아 신혜영(오른쪽) 팀장과 면담하고 있다. 2016년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김양은 현재 학업을 중단한 상태다.


부모를 따라 중도입국한 청소년들은 한국말을 잘 못한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해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문화 시대로 진입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이나 상당수 다문화가정 2세들은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다.

중국동포 김지아(가명·15)양은 ‘초졸’이다. 2016년 아빠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김양의 국내 학력은 초등학교 6학년을 1년 다닌 게 전부다. 중학교 입학 서류를 제때 마련하지 못해 입학 시기를 놓쳤고, 이후 진학을 포기했다. 두세 살 어린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면 자신의 서투른 한국어가 더욱 부끄러울 것 같았다. 따돌림도 걱정됐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김양은 자연스레 또래 친구들과 멀어졌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아졌다. 활달한 성격도 바뀌어 2년째 ‘은둔형 외톨이’(일명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5일 정도는 집 밖으로 안 나가요. 그런 날엔 말을 안 하니까 한국어 실력도 제자리죠.” 국민일보는 지난 23일 김양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서울 성북구의 한 다문화센터에서 만난 김양은 “센터에서 선생님을 만나기로 하지 않았다면 오늘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은 정오가 다 돼서야 일어났다. 평소 기상 시간보다 3시간 정도 이른 날이라고 한다. 같이 놀 친구가 마땅치 않은 김양의 ‘베프’(베스트 프렌드)는 스마트폰이다. 대개는 새벽 3~4시까지 스마트폰을 하다가 잠든 뒤 오후 3시쯤 일어난다. 또래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할 때 김양은 하루를 시작하는 셈이다.

김양은 이날도 깨자마자 휴대전화부터 찾았다. 휴대전화에는 중국의 동영상 공유 앱 ‘틱톡’, 중국판 카카오톡이라 불리는 ‘웨이신(WeChat)’ 등이 깔려 있다. 김양의 휴대전화에서 한국어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프리드로우’ 같은 한국 웹툰을 좋아하지만 이마저도 중국어 번역본을 찾아서 본다. 중국 채널이 나오지 않는 거실 TV는 건드리지도 않는다. 한국 생활 4년차에도 여전히 한국어가 서툰 탓이다. 김양은 “매일 혼자 있거나 밖에 나가도 중국 친구들만 만나니까 한국어를 쓸 일이 별로 없다”고 털어놨다.

유일한 말 상대는 초등학생 사촌동생이다. 동생이 학교에 가거나 친구들과 놀러나가면 다시 혼자가 된다. 함께 사는 고모는 돈을 버느라 바빠 집에 일찍 들어오는 일이 드물다. 애인과 함께 사는 아빠의 얼굴은 더욱더 보기 힘들다. 김양은 이렇게 고립의 악순환에 빠졌다.

김양은 고모가 차려놓고 간 김밥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오후 2시쯤 다문화센터를 향해 집을 나섰다. 김양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청소년 프로그램을 찾고 있다. 그는 “집에 혼자 있으면서 말수도 줄고 성격도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몇 개월 동안 직접 여러 사회복지관에 문의해봤지만 “자리가 다 찼다” “알아보고 다음에 연락 주겠다”는 답만 돌아온 터였다.

이날은 “근처 센터에 자리가 있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업 난이도가 조금 안 맞을 수도 있다”는 말에도 김양은 “빨리 수업을 듣고 싶다”고 답했다.

오후 4시쯤 귀가한 김양은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요새 김양은 ‘전민K가(全民K歌)’라는 노래방 앱에 빠져 있다. 힙합을 좋아해서 랩 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데 이를 본 다른 이용자들이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이날은 서울에 산다는 한 20대 중국동포 남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디 살아?” 얼마간 메시지를 주고받던 김양은 다음 주 홍대 근처에서 남성을 만나기로 했다. 김양은 이렇게 연락하는 ‘오빠’가 4~5명 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사귄 친구들은 이제 얼굴 보기 어려워졌어요. 이렇게 만나는 게 더 편해요.” 김양은 이튿날 새벽까지 스마트폰을 만지다 잠들었다.

김양은 한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게 꿈이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매번 반에서 1등을 차지했고 전교 3등까지 해봤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을 떠난 지 3년 만에 “공부보다 돈을 버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학교는 이제 그의 선택지에 없다. 김양은 “길거리에 교복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지만 이젠 나와 상관없는 일이 돼버렸다”며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르바이트부터 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양과 같은 청소년은 매년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도입국청소년은 증가 추세지만 학교 부적응 문제로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신혜영 하나다문화센터 팀장은 “외국 국적의 아이들은 학교를 갑자기 그만둬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며 “‘히키코모리’처럼 사회성이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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