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접거나 돌돌 마는 건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상상 속 물건이었다. 이 영화적 상상력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스마트폰이 삶을 침투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폴더블폰이라는 새로운 물건이 소비자들과 만남을 앞두고 있다. 폴더블폰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사용되면서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OLED는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물질을 디스플레이 후면에 증착시킨 디스플레이다. 화면을 자유롭게 구부리거나 휘도록 해 다양한 형태의 기기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01년 8.4인치 풀컬러 OLED를 개발하는 등 2000년대 초부터 OLED 사업을 시작했다.
2010년 선보인 삼성전자는 갤럭시S부터 OLED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왔다.삼성전자는 2013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윰(YOUM)’을 발표했다. 평면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의 플랫폼을 벗어나 접을 수 있는 폴더블, 말 수 있는 롤러블 스마트기기에 대한 청사진 또한 이때 제시됐다. 삼성전자는 디스플레이가 자유롭게 휘는 모습을 시연했고, 엣지 스크린을 탑재한 스마트폰 시제품도 선보였다.
눈길을 끄는 건 CES 2013에서 소개한 콘셉트 영상이다. 영상에는 폴더블 스마트폰이 등장하는데 갤럭시 폴드처럼 인폴딩 방식에 외부에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형태다. 삼성전자가 이미 이때부터 폴더블 스마트폰의 형태를 정해두고 개발에 나섰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롤러블 스마트폰이다. 막대 형태의 기기에서 버튼을 누르면 디스플레이가 팝업 형태로 펼쳐진다. 갤럭시 폴드가 시장에 안착하면 가까운 미래에는 롤러블 스마트폰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단서로 볼 수 있다.
2013년 하반기에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출시됐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라운드와 LG전자의 G플렉스다. 갤럭시 라운드는 ‘세계 최초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탑재 스마트폰’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렇다고 화면을 휠 수 있는 제품은 아니다. 화면이 양옆으로 구부러진 형태다. 정확히 말하면 곡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이었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갤럭시 라운드는 양산형 제품이라기보다 폴더블 스마트폰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시제품 성격이 강하다. 삼성전자로선 평면이 아닌 곡선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사용했을 때 제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테스트가 필요했다. 폴더블폰을 만들려면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배터리, 기판, 부품 등도 휘어짐에 안정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G플렉스는 갤럭시 라운드와 달리 화면 위아래가 휘어 있는 형태였다.
삼성전자는 2014년 스마트폰 측면에 엣지 디스플레이를 도입한 갤럭시 노트 엣지를 출시하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활용을 이어간다. 2015년 갤럭시S6 엣지는 양쪽에 엣지 디스플레이를 적용하며 스마트폰 디자인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삼성전자는 2017년 갤럭시S8부터 프리미엄 라인업 전 제품에 엣지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건의 관련 특허를 확보하며 폴더블폰 개발에 열중하던 삼성전자는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건으로 주춤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전반에서 보수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높은 사양이나 혁신보다는 안전성을 우선해 고객 신뢰를 확보하는 게 급했기 때문이다. 제품을 구부려야 하는 폴더블폰 특성상 안전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후 삼성전자는 폴더블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 8월 갤럭시 노트9 공개 현장에서 고동진 IT·모바일(IM)부문 사장은 “품질과 내구성 문제를 넘어섰다”며 “의미 있는 혁신이 되기 위한 마지막 능선을 넘었다”고 폴더블폰 출시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 삼성전자는 삼성개발자회의(SDC)를 통해 폴더블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를 공개하며 폴더블폰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삼성전자가 치고 나가자 중국 업체들도 맹추격을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화웨이 중 누가 먼저 폴더블폰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는 사이 이름도 생소한 중국 로욜이라는 회사가 세계 최초의 폴더블폰이라며 ‘플렉스파이’라는 제품을 깜짝 공개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제품은 양산형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제품이 평평하게 펼쳐지지도 않았고, 화면 가운데가 우글우글 일어나서 보기 싫은 수준이었다.
화웨이가 지난 24일 공개한 ‘메이트 X’도 디스플레이는 플렉스파이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제품 시연할 때도 터치가 잘 안 되고 디스플레이가 오작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두 제품은 ‘아웃폴딩’ 방식을 적용했다. 현재까지는 인폴딩 방식을 적용한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가 완성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실장 노태문 사장은 “폴더블폰 상용화 과정에서 보통 플래그십을 개발할 때보다 4~5배의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최적화한 상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폴더블폰은 이제 출발점에 섰다. 기술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다. 특히 기존 디스플레이는 유리 소재 커버로 디스플레이를 보호했는데, 폴더블은 유리를 쓰기가 어렵다. 최근 업계에서는 폴리이미드(PI) 필름에 주목하고 있다. 유리처럼 강하면서 구부릴 수 있는 신소재이기 때문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