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면서 두 정상이 회담을 통해 도출할 ‘하노이 선언’의 윤곽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특히 두 정상은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둘러싼 기존에 알려진 내용 이외 실제 담판을 통해 추가적인 내용을 최대한 담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현지 소식통과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이번 회담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영변 핵시설의 폐기·검증’에 플러스 알파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시설 폐기’ 등이 선언문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많다. 또 이번에 북·미 종전선언이 이뤄지는 동시에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다자협상 추진까지 언급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비핵화와 관련해선 꽤 구체적인 내용이 명기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하노이 선언에는 북·미 양측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가운데 이를 위한 초기 조치로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무그룹을 일정기간 내 구성하는 내용까지도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이미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영변 핵시설의 ‘조건부 폐기’를 약속했기 때문에 이번엔 최소한 동결 이상의 합의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핵시설 폐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구체적인 폐쇄 시간표와 검증 방식까지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영변 플러스 알파로 ICBM 생산시설이나 ICBM 일부의 폐기 또는 반출을 약속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미국 고위 당국자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대량살상무기(WMD)·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북한과 합의할 우선순위로 언급했다. 이에 대해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영변의 가치가 과소평가돼 있기 때문에 미국은 ICBM 생산시설 폐기나 일부 반출과 같은 가시적 성과를 간절히 원했다”며 “대북 제재 완화가 절실한 북한 입장으로서도 ICBM 관련 부분적 합의는 고려해볼 만하다”라고 분석했다.
북·미 관계개선 분야는 양자 종전선언이 핵심 카드다. 청와대가 전날 북·미 종전선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북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져 북한이 받기만 하면 하노이에서 공식 선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양자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카드라는 게 중론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입장에서 적국인 미국과의 종전선언은 연락사무소 설치 등 다른 관계개선 조치보다 훨씬 상징적이면서 대내외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안”이라고 말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추후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언제든 번복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4자 종전선언보다 부담이 적다.
북·미 종전선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향후 평화협정을 위한 다자협의체 구성 여부다. 이 사안까지 이번 회담에서 논의될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협상 지렛대로 사용하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문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하노이 선언에 들어갈지 여부도 우리의 관심사다. 제재 해제와 관련해 북한에 줄 것이 마땅치 않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경협은 상당히 매력적인 사안이다. 따라서 제재 위반 소지가 적은 금강산 관광에 대한 포괄적 제재 면제는 기대해볼 만하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군 유해 송환과 함께 푸에블로호를 반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일종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푸에블로호 반환도 약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푸에블로호는 북한이 1968년 1월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납치한 미 해군 정보수집함이다. 북한은 그해 12월 생존 승무원을 돌려보냈으나 선체와 장비는 몰수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