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 지켜낸 간송 전형필은 독립유공자”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이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열리고 있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렉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본 골동상 마에다 사이이치로에게서 당시 서울 기와집 20채 값인 거금 2만원에 사들였다. 권현구 기자
 
간송


“간송(사진)은 문화재야말로 우리 역사와 시대정신이 담긴 증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니 일본으로 마구잡이로 유출되던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 그 기준이 되는 걸 모으신 겁니다.”

간송 전형필(1906~1962). 서울 종로 일대 상권을 장악한 대부호의 상속자였던 그는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을 들여 미술품을 수집했던 대수장가였다.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 고려자기와 조선백자 등 소중한 유물들이 일본 등지로 마구 팔려나가던 시절이었다. 국보 12점, 보물 32점 등 문화재 2만여 점이 그에 의해 지켜졌다. 간송 앞에 단순한 수장가 이상의 ‘문화재 지킴이’ ‘민족문화 수호자’라는 애국적 타이틀이 붙는 이유다.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렉숀’전(3월 31일까지)은 간송의 삶을 전시를 통해 풀어 놓았다. 이 전시를 기획한 전인건(48) 간송미술관장을 지난 20일 DDP에서 만났다. 간송의 장손인 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부친 전성우(1934~2018)씨의 바통을 이어 관장직을 맡고 있다.

전 관장은 할아버지 간송이 민족 문화 수호 차원에서 문화재를 수집했음을 누차 강조했다.

“일반 수장가라면 단원 김홍도가 유명하니 그의 작품만 모으지요. 간송은 단원의 윗대와 아랫대의 작품까지 계통적으로 모았습니다. 소장품으로 가치는 떨어지더라도 연구 자료로 중요하니 함께 모은 것이지요.”

그는 “언젠가는 (조선이) 독립할 거라는 신념이 없고서는 그런 수집 활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광복 이후에는 거꾸로 수집 활동을 그만뒀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해방 이후 보성고보 학교 신문인 ‘인경’에 실렸던 인터뷰 기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직도 모으십니까”라는 질문에 간송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는 독립이 됐으니 저는 좀 게을러도 됩니다. 이제는 누가 사도 우리 것 아닙니까.”

간송에게는 교육사업도 민족 해방을 위한 준비였다. 1940년 동성학원을 세워 보성고보를 인수한 것이다. 간송의 보성고보 인수는 당시 신문 1면에 실릴 정도로 큰 뉴스였다. 전 관장은 “재정난으로 허덕이는 보성고보를 넘겨받고자 했지만, 조선총독부가 방해하는 바람에 실제 인수까지 2년이 걸렸다. 만날 때마다 조건이 바뀌었지만 끈질기게 협상해 결국 성사시켰다”고 했다.

왜 보성고보였을까. 그는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다. 3·1운동을 촉발한 요인의 하나가 일본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일으킨 2·8 독립선언이다. 2·8 독립선언과 3·1운동의 연결 지점에 보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유학생 11명 가운데 보성고보 출신이 2명이었다. 그중 송계백은 2·8 독립선언문을 가지고 한국으로 건너와 은사인 보성고보 최린 교장에게 알렸고, 이것이 3·1운동의 핵심인 민족지도자 손병희 선생한테 전달된 것이다. 또 전국에 배포된 2만~3만여장의 3·1 독립선언문의 인쇄처도 보성고보였다.

전 관장은 최근 한 여고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수행평가 때문에 조사를 하다 간송이 독립유공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는 그 학생은 “총칼을 들고 폭탄을 던지는 독립운동도 있지만, 간송처럼 교육을 통해 인재를 키우고 문화재를 지키는 것도 광복 이후 미래 준비를 위한 것이 아니냐. 간송도 독립유공자로 지정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일상에서의 간송은 어땠을까. 집안에선 당시 가부장 사회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따뜻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한 번도 자녀들에게 큰소리를 친 적이 없었다. 수학 성적이 떨어지면 혼을 내는 대신 자는 동안 몰래 머리맡에 수학 참고서 몇 권을 두는 식이었다고 생전 부친에게서 들은 일화를 전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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