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택시장을 따라 활약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영역은 수리와 리모델링입니다.”
미국 최대 주택용품 판매업체 ‘홈디포’는 최근 실적발표회에서 주택시장의 침체와 자신들의 사업성은 별개라고 강조했다. 주택이 낡아질수록 오히려 홈디포의 매출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게 캐롤 토메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주장이었다. 그는 “미국 내 주택 재고의 절반 이상이 40년을 넘었는데,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리를 해가며 옛집에 오래 머무는 집주인이 늘어난다는 홈디포의 강변을 뒤집어 보면 새 집을 사려는 수요가 사라지는 미국 주택시장의 동향이 드러난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2월 주택착공 실적이 전월 대비 11.2% 감소했는데, 2년여 만의 최저치였다고 최근 밝혔다. 눈폭풍이 많았던 계절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미국 주택시장의 약세는 연중 지속된 편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이 미국의 경제성장률 위협 요인으로 첫손에 꼽는 것도 주택시장이다.
집값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매매가 뜸해진 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적하는 글로벌 주택가격지수는 지난해 2분기 162.69에서 3분기 160.13으로 1.57% 하락했다. 2000년의 세계 주택가격을 100으로 보는 이 지수가 1.5% 이상 떨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컸던 2009년 1분기(-3.02%) 이후 처음이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중국의 부동산도 동력을 잃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산출하는 주요 도시 신규 주택가격 상승률은 0.6% 수준으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중국의 부동산 공실률은 고질적인 ‘그림자 금융(은행 시스템 밖에서 이뤄지는 거래)’ 문제와 함께 시한폭탄으로도 묘사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아파트의 공실률은 20%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최소 5000만 가구다. 네이멍구의 공실률은 7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호주 등 주택시장 문제가 심한 국가들은 “부동산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지거나 실물경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는 메시지를 계속 시장에 내보낸다. 다만 가계의 움직임에는 부동산 침체가 반영되기 시작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한국의 가계부채는 2000억원 줄었다. 국토교통연구원의 부동산 전망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달 역대 최저 수준인 91을 기록했고,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주택 미분양과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건설투자가 조정 양상을 지속하는 가운데 주택시장의 공급 과잉 우려도 제기된다” “부동산 시장 동향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집값이 떨어지면 빚을 진 가계의 부담이 늘어나고, 이 부담은 각 경제주체들의 소비 억제로 이어진다. 노무라는 한국 경제를 두고 ‘디레버리징’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노무라는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 완화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수요 축소, 고용 우려 등으로 (한국) 가계가 저축을 늘릴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